2005년 게임개발사 네오플이 선보인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PC 온라인 게임 중 하나다. 3D 게임이 대세였던 당시 오락실에서 유행하던 2D 횡스크롤 콘셉트를 적용해 대박을 친 건 물론이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을 넘어 글로벌에서 인기가 여전하다.
여기에는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고 통 큰 베팅을 한 김정주 넥슨 창업주가 있어 가능했다. 그의 안목과 결단이 던파를 ‘K게임 한류의 원조’라는 역사를 만들어낸 글로벌 빅 IP(지식재산권)로 탄생시켰다. 던파는 이제 모바일에서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
김정주 통 큰 베팅으로 잡은 던파
던파는 김정주 창업주가 인수에 실패했다면 지금과 같은 한류 원조와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다.
넥슨은 2004년 대표작 ‘카트라이더’ 흥행과 ‘메이플스토리’ 개발사 위젯 인수로 사세를 키워갔으며 증시 상장 계획도 차근차근 세워갔다. 김정주 창업주는 공격적 행보를 계속해 2008년 던파 인수에 나섰다.
네오플이 2005년 선보인 액션 RPG(역할수행게임) 던파는 2006년 12월 동시접속자 수 10만 명을 기록하고, 2007년 ‘던파 페스티벌’에 3만 명이 운집할 정도로 빅히트를 쳤다. 가히 ‘던파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였다. 더구나 네오플은 중국 게임사인 텐센트와 배급 계약을 맺고 2008년 6월을 목표로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 성장에 속도를 내고 있던 김정주 창업주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게임이었다.
하지만 넥슨은 당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에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 현금 보유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내부에서는 내켜 하지 않았다.
여기에 서울대 비운동권 출신의 괴짜 게임 사업자 허민 네오플 대표가 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민 대표는 김정주 창업주를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던파의 운명은 2008년 7월 정해졌다. 김정주 창업주와 허민 대표가 협상을 위해 마주 앉았다.
그러나 자칫 협상이 불발될 뻔했다. 넥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플레이’에 따르면 김정주 창업주는 허민 대표에게 “이게 가진 돈 전부야”라며 승부수를 던졌다. 메이플스토리를 인수할 때 썼던 전략이다.
하지만 허민 대표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오시면 되잖아요”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넥슨은 일본 법인에서 2788억 원,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에서 추가로 500억 원을 끌어와 3852억 원으로 던파를 인수했다. 김정주 창업주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던 당시 빅딜은 넥슨의 운명을 바꾸고 한국 게임사의 역사를 만드는 첫 발걸음이 됐다.
한국 넘어 글로벌 성공신화 쓰다
넥슨의 품에 안긴 던파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공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2008년에 중국 진출 한 달 만에 중국 온라인 게임 1위에 올랐고, 2009년 말에는 국산 게임 중 최초로 한국·중국·일본 3개국 동시접속자 수 20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연 매출 1000억 원을 넘어섰다.
던파는 해외 중 중국 성과가 단연 돋보인다. 2014년 중국에서 동시접속자 수 500만 명을 기록하며 게임 한류의 열풍을 이끌었다. 이 덕분에 2016년 텐센트와 계약을 갱신하면서 계약 기간을 10년으로 체결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도 글로벌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부분 유료화 게임 매출 순위에서 텐센트의 모바일 게임 ‘왕자영요’와 ’화평정영’,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가 1~3위를 각각 차지한 가운데 던파가 한국 게임으로 유일하게 10위권을 기록했다.
던파는 현재 글로벌 누적 이용자 수 8억5000만 명이라는 거대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고, 액션 장르의 독보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던파의 인기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누적 매출은 180억 달러(약 21조원)로, 이는 SF 액션 블록버스터 '스타워즈' 모든 시리즈의 극장 수입을 합친 것보다 수십억 달러가 많은 것이다.
던파는 지난 2018년에는 유의미한 글로벌 성과에 힘입어 제55회 무역의 날 ‘수출 10억불 탑’ 정부포상을 받기도 했다.
던파는 국내 게임 역사도 새로 썼다. 던파의 흥행에 힘입어 네오플은 한국 게임사 중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넘었다. 지난 2017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네오플은 매출 1조1495억 원, 영업이익 1조637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92.53%에 달했다. 이후에도 1조2156억 원(2018년), 1조367억 원(2019년)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던파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번엔 모바일서 새 역사 연다
던파가 글로벌까지 접수한 빅 IP가 된 데는 뭐니 해도 게임의 재미 때문이다. 2D 도트 그래픽과 횡스크롤 진행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과거 오락실에서 즐기던 아케이드 게임의 조작 방식을 온라인에서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또 ‘액션 쾌감’이라는 개발 모토에 맞춰 각종 콤보 액션이 가능한 극한의 ‘손맛’을 제공해 국내외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넥슨은 이런 던파 IP의 매력을 모바일에 구현한 최신작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오는 24일 출시해 또다시 성공신화에 도전한다.
던파 모바일은 빠르고 호쾌한 원작 고유의 액션성을 모바일 플랫폼에 담아냈다. 각 던전을 돌며 몬스터를 공략하는 전투와 유저 간 대전(PvP)도 수동 전투를 기반으로 한다. 수동 전투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작 방식에도 공을 들였다.
윤명진 총괄 디렉터는 “손맛을 위해 30번 이상 조이스틱을 개선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며 “여러 돌발 상황에서 플레이가 끊기지 않고 다시 연결돼 이어할 수 있도록 클라이언트 최적화에도 힘썼다”고 말했다.
넥슨은 사내 임직원과 유저 테스트에 호평이 이어지면서 한껏 고무돼 있다. 넥슨 관계자는 “사내 테스트가 굉장히 엄격하게 진행됐는데, ‘게임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라거나 ‘수동 전투 기반의 액션성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출시일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넥슨은 던파 모바일에 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내달 말까지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주요 빌딩 5곳에 초대형 3D 옥외 광고를 진행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던파처럼 크게 성공한 IP로 만든 후속작은 웬만해서는 흥행한다”며 “던파 모바일의 경우 얼마나 빅히트를 칠지가 관점 포인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