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습니다’ 24일 이란과 A매치 맞대결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킥오프에 앞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6만4375명의 축구 팬이 함께 참여하는 카드 섹션 이벤트가 열렸다. 동쪽 스탠드 하단부에 자리 잡은 팬들이 한마음으로 들어올린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글귀에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하던 관중석이 일순 고요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장에서 직접 태극전사들을 보고 싶던 팬들의 마음, 관중석을 가득 채운 팬들의 열정을 확인하고 싶던 선수들의 마음을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가 만원 관중 앞에서 치러진 건 2019년 3월 콜롬비아와 평가전 이후 3년 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 열린 경기 중 최다 관중 기록도 세웠다.
기세가 오른 대표팀은 한국 축구가 꼭 보고 싶던 장면 하나를 추가했다. 지난 11년 간 이겨보지 못한 난적 이란을 격파했다. 에이스 손흥민(30·토트넘)이 전반에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고, 베테랑 수비수 김영권(32·울산)이 후반에 한 골을 보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모처럼만에 현장에서 선수들의 투지를 확인한 팬들은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에서 이란을 2-0으로 꺾었다.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에서 7승(2무)째를 거두며 승점을 23점으로 끌어올려 이란(22점·7승1무1패)을 제치고 A조 1위로 올라섰다. FIFA랭킹 29위 벤투호보다 상위 팀인 이란(21위)을 잡아 랭킹 포인트를 끌어올릴 발판도 만들었다. 오는 31일 발표하는 3월 FIFA랭킹은 다음달 2일 카타르월드컵 본선 조 추첨에 포트 배정 기준이 된다.
손흥민의 첫 골은 전반 추가시간에 나왔다. 상대 수비수 한 명을 제친 뒤 아크 왼쪽 외곽 25m 지점에서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회전 없이 대포알처럼 뻗어나간 볼은 이란 수문장 아미르 아베드 자데의 손을 거친 뒤 다리에 맞고 굴절돼 골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97번째 A매치에서 기록한 31번째 득점포. 아울러 최종예선 무대에서 4번째 골을 기록하며 메흐디 타레미(이란), 우레이(중국), 이토 준야(일본) 등과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후반 18분에는 추가골이 터졌다. 왼쪽 측면에서 황희찬(26·울버햄프턴)이 올려준 볼이 정면에 있던 이재성(30·마인츠)을 거쳐 공격에 가담한 김영권의 슈팅으로 연결됐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독일전(2-0승) 선제골을 떠올리게 하는 득점 장면이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후반 내내 파상 공세를 펼치며 흐름을 주도했다. 6만 여 팬들은 카드 섹션과 절도 있는 박수, 파도타기 응원 등으로 힘을 실어줬다.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 2011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 이후 11년 간, 7경기 동안 이어 온 무승(3무4패)의 고리를 비로소 끊어냈다. 상대전적에서도 10승10무13패로 간격을 좁혔다.
사령탑 벤투 감독에게도 반가운 결과다. 지난 2018년 부임 이후 42차례의 A매치에 참여해 28승(10무4패)째를 이끌어내며 단일 재임 기간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다. 울리 슈틸리케(68·독일) 전 감독과 공유하던 종전 기록을 스스로 뛰어넘었다. 아울러 20차례의 홈경기에서 무패 행진(16승4무)을 이어갔다.
한준희 KBS해설위원은 “선제골로 이어진 손흥민의 무회전성 슈팅은 그의 존재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보여줬다”면서 “황희찬, 이재성 등 나머지 공격진의 몸놀림도 좋았다. 후반 들어 상대 진영에서 선보인 패스&무브 패턴도 수준 높았다"고 칭찬했다.
경기 후 손흥민은 “우린 아직 완벽하지 않다. 더 완벽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서 “아직 최종예선이 끝나지 않은 만큼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했다. 이어 “(박)지성이 형이 잘 한만큼 저희들도 잘 하겠다. 주장이라 (대표팀에) 애정이 정말 많이 간다”면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원 관중 앞에서 뛴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축구하며 행복한 모습 보여드리고, 같이 웃고 같이 좋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한편 B조의 일본은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 B조 9차전에서 후반 막판 두 골을 몰아넣으며 2-0으로 이겼다. 일본은 최종전 한 경기를 남기고 B조 3위 호주와 승점 차를 6점으로 벌리며 최소 조 2위를 확보해 카타르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