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팝스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히트곡 '버터'(Butter)로 야심 차게 그래미 문을 또 한 번 두드렸지만, 견고한 벽은 뚫리지 않았다. 쟁쟁한 후보들과 맞붙은 끝에 수상 문턱에서 멈춰 섰지만, '다이너마이트'(Dynamiter)에 이어 '버터'까지 2년 연속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4일 "정규 음반이 아니라 일종의 이벤트성 싱글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BTS는 (음악계에서) 충분히 인상적이고 대단하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더 멋있는 곡이 나온다면 그래미 후보로 또 오를 수 있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요계 안팎에서는 BTS가 유례없이 쟁쟁한 후보들과 맞붙어 경쟁이 치열했다는 분석이 많다. BTS를 꺾고 트로피를 들어 올린 도자 캣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혀왔다. 10대 때부터 음악 플랫폼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신이 만든 음악을 올린 도자 캣은 2014년 데뷔한 이래 감성적이고 감미로운 곡을 선보여왔다. 특히 '키스 미 모어'(Kiss Me More)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그는 이번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총 8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 수상은 음악 관계자들로 구성된 레코딩 아카데미 투표인단(보팅 멤버·Voting member)의 투표로 정해지는데 올해 경쟁자들이 특히나 쟁쟁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그래미가 그간 보이그룹에 호의적이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면서 "2년 연속 후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BTS가 그래미로부터도 인정받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를 두고 '그래미가 또 그래미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그래미 후보가 발표된 이후 외신에서는 메가 히트곡인 '버터'가 4대 본상인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 부문에 하나도 오르지 못한 것을 놓고 BTS가 박한 평가를 받았다는 지적이 잇따른 바 있다. 그래미는 그동안 다른 대중음악상과 비교해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던 게 사실이다. 특히 백인 남성이 아닌 비(非)백인과 여성 아티스트에게 유독 벽이 높고 회원 다수가 '새로운 선택'에 인색하다는 평가가 많아 최근에는 그래미의 본질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는 최근 수년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다양성 측면을 고려해 투표인단을 보완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그래미가 아직 덜 변했구나', 'BTS에 상을 줄 만큼 변화가 충분치 않았구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 등만 보더라도 이른바 주류 문화를 중시하는 '유리 천장'이 많이 깨지고 있는데 '그래미는 여전히 로컬(local·현지)인가'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그동안 BTS의 모든 활동은 '아미'(BTS 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번 수상 실패가) 아미들의 노력에 대한 시사일 수도 있어 실망감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봤다.
차트 성적이나 대중적 인기를 잣대로 삼은 여타 음악 시상식과 달리 그래미는 음악적 본질에 충실한 만큼, 이번 결과를 계기로 BTS가 음악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일례로 작곡가 세바스티앙 가르시아가 네덜란드 출신 뮤지션인 루카 드보네어에게 판매한 멜로디를 '버터'에 이중으로 사용했다는 논란은 BTS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로서는 BTS가 수상자로 지명할 만큼 (BTS 음악이) 음악적으로 완벽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 있다"며 "음악·예술적 측면에서 BTS가 더욱 역점을 두면 된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버터', '다이너마이트' 등의 곡이 보편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이제는 대중성에 더해 음악적으로도 BTS만의 색깔을 확실히 찾아야 할 때"라며 "이런 노력이 잘 이뤄진다면 내년 그리고 그 후에도 그래미를 노려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