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투고타저(投高打低)' 시대로 전환하는 것일까. 넓어진 스트라이크존(S존)이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정규시즌 개막 8경기(4월 10일까지) 기준으로 리그 평균 타율은 0.231다. 경기당 득점은 7.45점, 홈런은 1.00개다. 2021년 같은 기간 타율은 0.254, 경기당 득점 9.28점, 홈런은 1.44개였다.
반면 투수 기록은 좋아졌다. 2021시즌 개막 8경기 기준으로 4.19였던 리그 평균자책점은 3.10으로 낮아졌다. 9이닝당 볼넷은 4.25개에서 3.02로 감소했고, 61.4%였던 스트라이크 비율은 64.6%로 상승했다. 투고타저 현상이 뚜렷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22시즌 앞두고 S존 확대를 선언했다. 작년까지 적용된 S존이 야구 규칙에 적시된 정의(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 베이스 상공을 말하며, S존은 공을 치려는 타자의 스탠스에 따라 결정된다)보다 좁았다고 봤다. 'S존 정상화'를 통해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을 완화하고, 스피드업(경기 시간 단축)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새 S존은 상·하 폭이 크다. 또한 홈플레이트 좌·우 경계선에 살짝 걸친 공도 스트라이크로 판정됐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새 S존을 접한 투수들은 반색했다. 그러나 타자들은 볼멘소리를 냈다.
뚜껑이 열리자 예상대로 새 S존은 투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개막전(4월 2일)에선 탈삼진 85개가 쏟아졌다. 5개 구장에서 모두 경기가 열린 2020시즌 개막전(68개)보다 17개 많았다. 이날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는 무득점에 그쳤다. 특히 NC는 SSG 랜더스 외국인 투수 윌머 폰트에게 9이닝 퍼펙트를 당했다.
제구가 좋은 투수들은 S존 상단과 좌·우 경계선을 거침없이 공략했다. 7일 KT 위즈전에서 6이닝 1실점 호투한 이태양은 "생각보다 높게 들어간 커브도 스트라이크를 잡아줬다. 제구에 자신 있다 보니 '이 정도만 되면 편하게 투구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포수의 프레이밍(포구 기술을 이용해 스트라이크 판정을 잘 받아내는 능력)까지 더해지다 보니, 타자는 속수무책이었다.
투수들의 자신감은 공격적인 투구로 이어졌다. 실제로 2021시즌(개막 8경기 기준) 17.6개였던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올 시즌 15.9개로 줄었다. 한 타자당 투구 수도 3.98개에서 3.80개로 감소했다. 빠른 템포의 투수전이 자주 펼쳐지면서, 경기 시간도 단축됐다. 2021시즌 3시간 14분이었던 평균 경기 시간은 2022시즌 3시간 6분을 기록했다. 11일 현재 팀 평균자책점 1위(1.97) SSG의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 47분에 불과하다.
타자들은 불만이 크다. 상·하는 물론 좌·우 S존을 두고도 혼란을 겪고 있다. LG 트윈스 왼손 타자 오지환은 3일 광주 KIA전 1회 초 볼카운트 0볼-2스트라이크에서 투수 션 놀린의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직구)에 루킹 삼진을 당한 후 심판에 강하게 어필했다. 홈플레이트에서 공 한 개 정도 빠진 공이었다. 같은 날 수원 KT전에 나선 강민호(삼성 라이온즈)도 상대 투수 배제성의 바깥쪽(오른손 타자 기준) 슬라이더가 'S존에서 빠졌다'고 생각하고 골라냈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다. 허공을 향해 탄성을 질렀다.
지난 5일 고척 경기에서는 이용규(키움 히어로즈)가 볼 판정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했다. 9회 말 1사 1루에서 LG 트윈스 투수 함덕주의 바깥쪽(왼손 타자 기준) 높은 공을 골라냈지만, 심판의 콜은 스트라이크였다. 삼진 아웃. 이용규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고, 타석에 배트를 두고 더그아웃을 향했다.
7일 SSG전에 나선 장성우(KT), 8일 롯데전에 출전한 양석환(두산 베어스)도 낮은 코스 공에 삼진을 당한 후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매일 이런 장면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타자의 대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빠른 승부나 커트(의도적으로 파울을 만드는 타격)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용규는 9일 삼성전 8회 초 타석에서 투수 이승현을 상대로 19구 승부를 펼치며 특유의 '용규 놀이'를 보여줬다. 개막 첫 5경기에서 7.49개였던 경기당 삼진은 이후 세 경기에선 7.07개로 줄었다.
S존이라는 무형의 공간이 정형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투수가 더 유리해진 건 분명하다. 이를 극복하려는 타자들의 전략도 다양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