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당에 거주하는 SK텔레콤 그래픽 디자이너 A 씨는 최근 출퇴근 시간이 1시간에서 30분으로 확 줄었다. 을지로 본사 대신 신도림에 마련된 거점오피스 '스피어'를 이용하면서부터다. 매일 아침 근무시간과 출근지만 등록하면 된다. 사내망이 연결된 PC도 준비돼 있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A 씨는 "집도, 사무실도 아닌데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재택보다 훨씬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IT 업계 중 일하는 문화 혁신에 가장 적극적인 SK텔레콤이 이달부터 신도림·일산·분당에 거점오피스 '스피어'를 운영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근무 방식 변화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12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시티 2개 층에 조성한 스피어를 직접 들러봤다. 재택과 출근의 장점을 결합해 업무 집중도를 극대화하고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 인상적이다.
스피어는 별도의 출입카드 없이 얼굴 인식만 하면 0.2초 만에 문이 열린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창문 너머로 탁 트인 도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앱으로 오전 7시부터 예약할 수 있는데, 창가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다.
1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허먼 밀러 의자에 앉아보니 몸이 호사를 누리는 느낌이다. 레어템(구하기 힘든 물건)인 화이트 색상을 어렵게 공수했다.
스피어에는 두 가지 종류의 좌석이 존재한다. 협업에 특화한 '빅테이블'과 개인 몰입형 업무 공간 '아일랜드'다.
빅테이블 좌석은 파티션 없이 여러 직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환경을 제공한다. 각 자리에는 USB 케이블이 있어 노트북 하나만 들고 오면 곧바로 연결할 수 있다.
아일랜드 좌석은 마치 섬처럼 다른 자리와 서로 떨어져 있다. 곳곳에 방음막을 설치해 비대면 회의나 통화를 할 때 방해를 받지 않는다. 회의가 생길 때마다 자리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반투명 파티션은 코딩처럼 집중력을 요구하는 업무에 도움을 준다.
이곳에서는 개인 노트북 없이 스마트폰만 들고 와도 일을 할 수 있다. 클라우드 PC 시스템 '마이데스크' 덕이다.
새로운 업무 공간에 가면 노트북과 케이블 등 번거로운 세팅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이데스크는 얼굴 인증을 한 뒤 계정 정보만 입력하면 사내망과 연결된 개인 업무용 PC를 불러온다.
책상 위 태블릿에는 앱으로 자신이 지정한 가족사진 등을 띄울 수 있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한 회사의 배려다.
사무실 곳곳에는 무선 이동식 스크린 'LG 스탠바이미'가 있다. 개방된 공간에서 편하게 화상회의를 하거나 자료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다인용 회의 공간에는 스마트 카메라를 비치했다. 말하는 사람을 자동으로 인식해 화면과 소리를 키운다.
SK텔레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구성원의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최우선으로 하고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수요 조사 결과 직원 500명가량이 거점오피스 활용 의사를 밝혔다.
거점오피스를 기획한 윤태하 SK텔레콤 리더는 "본사 수준인 거점오피스의 공간을 60~70% 채우는 것이 목표다. 이용률은 주 2~3회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강남과 노원 등으로의 확장은 아직 검토 중이다.
'직딩(직장인)들의 로망'인 SK텔레콤 거점오피스에도 과제는 있다. 찾는 직원들이 많을수록 높은 임대료의 본사에 유휴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윤태하 리더는 "조직이 모이는 공간으로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