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의 타격 재능이 만개하고 있다.
이정후는 18일 기준으로 타석당 삼진(KK/PA) 0.0156을 기록 중이다. 64타석을 소화하면서 기록한 삼진이 단0 한 개. 타석당 삼진 수치가 규정타석을 채운 67명의 타자 중 최저다. 이 부문 2위 김헌곤(삼성 라이온즈·0.0576)과 차이도 꽤 크다. 지난해 타석당 삼진 1위 호세 페르난데스(두산 베어스·0.0567)의 기록도 압도한다.
이정후의 시즌 첫 삼진은 지난 7일 LG 트윈스전에서 나왔다. 9회 말 풀카운트 상황에서 LG 왼손 계투 임준형이 던진 시속 132㎞ 슬라이더에 배트가 헛돌아 개막 23타석 만에 무삼진 기록이 깨졌다. 하지만 이튿날 경기부터 9경기·41타석 무삼진 행진으로 타석당 삼진 수치를 0.02 이하로 낮췄다. 개막 첫 14경기에서 키움의 팀 삼진은 101개로 리그 5위(1위 한화 이글스·120개). 팀 삼진에서 이정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도 되지 않는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이정후는 데뷔 첫 시즌이던 2017년 타석당 삼진이 0.1077(622타석·67삼진)로 리그 최저 2위였다. 2018년에는 0.1115(520타석·58삼진)로 수치가 소폭 상승했지만, 2019년에는 0.0634(630타석 40삼진)까지 떨어트렸다. 개인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지난해에도 0.0680(544타석 37삼진)으로 수준급 기록을 유지했다. 올 시즌에는 스트라이크존이 확장된 영향 탓인지 리그 전체 타석당 삼진 기록이 0.1818에서 0.1964로 상승했다. 타자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이정후는 리그 기조를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강병식 키움 타격코치는 이정후에 대해 "선구안이 좋다. 볼과 스트라이크 구별을 잘한다"며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치는 공과 공 1개(약 7㎝) 정도 빠지는 볼을 잘 인지한다. 볼카운트에 따라 상대 배터리가 어떤 식으로 공을 배합할지 고민하고 대처하는 점이 뛰어나다"고 했다. 강 코치는 "무엇보다 이정후는 콘택트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워낙 영리하고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촌평했다.
이정후는 약점이 없는 타자다. 빠른 공은 물론이고 변화구 대처도 수준급이다. 올 시즌에는 헛스윙 비율(2.5%)까지 리그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이정후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 변화구를 대처할 때 폴스윙 하며 (방망이를 잡은) 팔을 놓기도 하고, 타이밍이 맞을 때는 (강한 타구를 날리기 위해) 두 팔을 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타석당 삼진 수치가 낮다고 해서 '좋은 타자'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정후 다음으로 타석당 삼진이 적은 김헌곤의 시즌 타율은 0.170이다. 낮은 삼진율을 높은 타율로 연결하는 건 타자의 능력이다.
이정후는 이 부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데뷔 후 단 한 번도 '규정타석 3할 타율'을 놓치지 않았다. 올 시즌에도 3할 안팎의 타율로 순항 중이다. 삼진이 적고 타율은 높은 이상적인 타자로 매년 진화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7일 KBO리그 최연소(23세7개월28일)이자 최소 경기(670경기) 900안타를 달성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최연소(24세9개월13일) 기록과 자신의 아버지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최소 경기(698경기) 기록을 함께 갈아 치웠다.
이종열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정후는 인터뷰에서 '하루에 네 번만 스윙하겠다'는 얘길 했었다. 한 타석당 스윙을 한 번만 하겠다는 건 공을 보는 것(선구안)에 대한 자신감을 얘기하는 것 같다"며 "이정후가 처음 KBO리그에 데뷔했을 때는 스윙이 크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결국 그게 좋은 스윙이라는 걸 본인이 증명했다. 이정후와 얘기해보면 아무리 빠르고 좋은 변화구라도 해도 배트 중심에 맞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 타석에서 보여주는 여유가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삼진이 적은 이유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