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팬데믹과 OTT 플랫폼의 확대로 영화 감독, 배우, 제작, 투자배급 등에서 ‘복합 국적’이 왕왕 등장하고 있다. 이에 한국영화의 정의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1일 개봉한 영화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고려인 4세 박루슬란 감독과 한국 제작진이 카자흐스탄에서 촬영했다. 출연 배우들은 모두 카자흐스탄이나 러시아 출신이고 스토리 또한 카자흐스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한다. 얼핏 카자흐스탄 영화처럼 보이지만 한국 제작사 아슬란 필름이 제작을 맡아 카자흐스탄과 합작한 한국영화에 속한다.
박루슬란 감독 역시 간담회에서 “한국 스태프들이 해외에 나가서 현지 연기자들과 함께 일하며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맞다”고 말했다.
‘배니싱: 미제 사건’도 마찬가지다.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최무성 등이 출연하고 서울에서 촬영했지만 영화의 국적은 프랑스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잡았으며 국내 배급사가 수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올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브로커’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한국영화로 분류된다.
감독만 외국인일뿐 제작은 영화사 집, 투자와 배급은 CJ ENM이 맡았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등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국적은 투자사, 제작사, 주요 인력 등 투자 및 제작 과정에 기여한 단체나 사람의 국적에 따라 나뉜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브로커’는 영화 투자사, 제작사(A24), 감독(아이삭 정) 등 모두 미국 국적이었다. 최근 영화 제작 환경의 세계화,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영화의 국적이 갖는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관객의 시선에서는 한국인 배우가 나오고 정서적으로 익숙한 내용의 작품이라면 ‘한국영화’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영화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애플TV+ 시리즈 ‘파친코’가 대표적인 예시다. 두 작품 모두 미국 국적의 작품이지만, 한국 배우들의 출연과 타지에 정착하려는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국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느냐가 관객들에게 중요해진 만큼, 작품의 국적에서 벗어나 한국 콘텐트에 대한 정의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 제작진이 해외에서 촬영한 작품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국내 제작사의 해외 입지가 높아졌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K콘텐트의 흐름에 발맞춰 ‘복합 국적’ 작품은 계속해서 등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