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한 가전 사업을 보고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판매 실적은 업계 선두를 달리는데 수익성은 장기간 바닥에 머물고 있어서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비용 부담까지 겹쳤다.
사업 중요도는 반도체와 모바일, 디스플레이에 점차 밀리는 모습이다. 그나마 함께 엮인 TV의 선전 덕에 부진을 희석하고 있다. 회사는 일단 프리미엄 가전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인데, 증권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삼성 가전, 영업이익률 바닥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VD(TV)·가전 합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5조4700억 원, 8000억 원이다. 매출은 분기 기준 최고 기록이다.
이에 반해 영업이익률은 5.17%에 그쳤다. 1만 원어치를 팔아 500원을 남긴 셈이다. 반도체(31.44%), 디스플레이(13.68%), 모바일·네트워크(11.80%)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해 연간 가전 영업이익률은 6.54%로 하락세에 진입했다.
2019년 당시 가전 사업을 이끌었던 김현석 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새로운 디자인 철학인 '비스포크'를 입힌 냉장고를 처음 선보인 뒤 라인업을 확대했다. 파스텔톤의 화사한 색상으로 젊은 소비자를 공략했다.
가격경쟁력을 가져가기 위해 국내외 OEM(위탁생산) 방식도 적절히 섞었다. 대표적인 제품이 비스포크 식기세척기로, 중국 메이디가 제조해 삼성 로고를 붙인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생산라인을 구축할 필요가 없으며 국가에 따라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다. 덕분에 2020년 영업이익률이 7.39%까지 올랐지만, 약발이 오래 가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은 가격 탄력성이 높은 제품이 아니다. 원가가 올랐다고 해서 소비자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공급망 관리(SCM) 강화와 프리미엄 제품 위주의 판매 등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사인 LG전자도 올해 1분기 가전 사업 영업이익률이 5.6%에 머물렀지만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률은 8.2%를 찍었다.
일부 소형가전을 제외하고 대부분 창원사업장에서 생산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지만, 자체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라인업을 앞세워 고객에 어필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가전과 TV 실적을 묶었는데, LG전자는 순수 가전 매출을 공개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브랜드파워를 내세운 마케팅 활동에 더 집중한다. 혁신 기능이 들어가면 부품의 원가가 올라가는데, 프로모션으로 경쟁하려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믿을 건 프리미엄 가전뿐 증권가는 TV가 가전의 영업이익률 하락을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실적을 세분화해서 분석했는데, 지난 1분기 TV와 가전의 영업이익률을 각각 7.0%, 2.8%로 추정했다. 가전 때문에 합산 영업이익률이 5.17%로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올해와 내년 순수 가전 영업이익률은 3%대 초반을 나타낼 것으로 관측된다. 이제 막 미래 먹거리로 키우기 시작한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치) 자회사 하만에도 추월당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가전 성수기 효과가 있지만 비용 증가 부담이 있고 VD 실적은 다소 둔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가전 시장에는 먹구름이 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오미크론 봉쇄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박으로 이어지며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일상 전환이 가속하며 코로나19로 인한 보복 소비 현상도 사라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GfK는 올해 1~2월 국내 가전 시장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0.5% 불과했다고 전했다. 특히 TV·에어컨·세탁기 등 대형가전은 7% 역성장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당분간 수익성을 보장하는 프리미엄 제품에 역량을 쏟을 방침이다. 지난 2월 출시한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이 선봉에 섰다. 우리나라에 새로 도입한 와인냉장고와 스마트 후드의 품격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계획이다.
정길준 기자 jeong.kilj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