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홋스퍼와 한국축구대표팀에서 간판 공격수로 활약 중인 손흥민이 거듭 혹사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전 세계 축구선수들이 결성해 운영하는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선수 부상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제도 변화를 촉구하며 ‘무리한 일정’의 대표적 사례로 손흥민을 꼽았다.
FIFPro가 최근 비대면 방식으로 개최한 워크로드(workload) 미디어 브리핑에서 손흥민의 일정이 화제가 됐다. 손흥민은 최근 3시즌 동안 총 172경기를 치렀다. 토트넘 소속으로 152경기,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0경기에 각각 나섰다. 출전시간 합계는 1만3576분에 이른다. 한 시즌 당 57.3경기를 뛴 셈인데, FIFPro측은 “연구 결과 선수가 한 시즌에 정상적으로 피로를 회복하며 온전한 컨디션으로 소화할 수 있는 한계치는 55경기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동거리다. 같은 기간 동안 손흥민은 소속팀과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며 총 22만3637㎞를 이동했다. 이동하느라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만 300시간에 달한다. 비행 중 서로 다른 시간대(타임존)를 넘나든 횟수는 204회에 이르렀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아시아 출신 선수라 겪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잉글랜드대표팀 주장으로 활약 중인 팀 동료 해리 케인과 비교하면 차이가 도드라진다. 케인은 최근 3시즌 동안 159경기(소속팀 128경기·A매치 32경기)를 소화하며 총 1만4051분을 뛰었다. 출전경기 수는 더 많지만, 이동거리(8만6267㎞)와 소요시간(123시간) 모두 손흥민 대비 삼분의 일 수준에 그쳤다. 타임존을 건너 뛴 횟수도 64회에 그쳤다.
요나스 베어-호프만 FIFPro 사무총장은 “경기 수와 이동 거리가 늘면 선수가 부상에 노출될 위험도가 높아진다”면서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거나 이동거리를 줄이거나 또는 출전 경기 수에 제한을 두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앞장서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일본대표팀 주장 요시다 마야(삼프도리아)의 생각도 같았다. “A매치 경기를 위해 장거리를 이동하는 아시아권 선수들이 유럽권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그는 “어린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뛸 수 있도록 리그 인프라를 개선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흥민이 ‘혹사 아이콘’으로 주목 받은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축구선수 출장경기 수와 이동거리 관련 이슈가 화제가 될 때마다 주인공급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19년 FIFPro가 ‘오프시즌 중 최소 4주 휴식’을 촉구하며 내놓은 보고서에도 손흥민이 등장한다. 당시 FIFPro는 “손흥민이 12개월간 8만㎞를 이동하며 78경기를 소화했다. 그 중 56경기는 휴식시간이 5일 미만이었다”고 짚었다.
흥미로운 건 강행군을 이어가는 당사자가 피로감을 호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흥민은 혹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내 일정에 대해 혹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지난해 11월 A매치 소집 기간 중 “대표팀에서 뛰는 건 축구선수에겐 특혜라 생각한다”면서 “(A매치 출전은) 어려서부터 꿈꿨던 것이고,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답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23골)에 오른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달 A매치 4연전을 치르는 손흥민은 “나는 프로선수다. 팬들이 많이 오셨는데 설렁설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순 없다”면서 “못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 하려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앞서 브라질전(1-5패)과 칠레전(2-0승)을 치른 손흥민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또 다른 남미의 강호 파라과이를 상대한다. 오는 14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집트와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