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한국 프로야구에 '몸값 100억원' 시대가 열렸다. KIA 타이거즈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외야수 최형우(39)와 4년 100억원에 계약한 것. 최형우는 2016시즌 타격 3관왕(타율·안타·타점)에 오른 KBO리그 최고 타자였다.
당시 '100억원 시대'에 대한 우려가 컸다. 리그 규모와 매출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이 흐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KIA는 주머니를 열었다. 최형우 영입 효과가 명가 재건, 나아가 통산 11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했다.
실제로 호랑이는 날개를 달았다. 최형우는 계약 첫 시즌(2017)부터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KIA는 정규시즌 1위에 올랐고, 두산 베어스와의 KS에서도 통합 우승까지 차지했다. 최형우의 이름 앞에는 '우승 청부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큰돈을 투자해 영입한 선수가 맹활약하면 팬들은 '이 맛에 현질(현금을 내고 구매)한다'며 열광한다. 화끈한 투자를 결정한 구단을 칭찬한다. KIA의 최형우 영입이 대표 사례다.
KIA는 올해도 '이·맛·현'이라는 표현으로 주목받고 있다. 3년(2019~2021)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KIA는 지난겨울 스토브리그에서 150억원(기간 6년)을 투자해 '거포' 나성범을 영입했다. 나성범은 마치 5년 전 최형우처럼 타선의 기둥으로 자리 잡았고, KIA의 상위권 진입을 이끌었다. 2021시즌 팀 타율 9위(0.265) 홈런 10위(66개)에 그쳤던 KIA는 올 시즌 타율 0.269 54홈런을 기록하며 두 부문 모두 1위(14일 기준)에 올라 있다.
최형우와 나성범 모두 계약 첫 시즌 초반부터 몸값을 해냈다. 최형우는 2017시즌 첫 60경기에서 타율 0.341 14홈런 43타점을 기록했다. 한 타자가 아웃 카운트 27개를 모두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발생하는 추정 득점인 RC/27은 무려 11.03이었다. 단연 팀 내 1위. 이 기간 결승타도 6개를 쳤다. 그중 3번은 8회 이후 1~2점 차 박빙 승부에서 나왔다.
나성범은 KIA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올 시즌 첫 60경기에서 주로 3번 타자로 타율 0.304 9홈런 39타점 RC/27 8.21을 기록했다. 결승타는 3개. 대비 승리 기여도(2.98·WAR)는 리그 8위에 올라 있다.
타고투저였던 2017시즌 최형우가 남긴 성적과 직접 비교하는 건 어렵다. 그래도 분명한 건 나성범의 공격 기여도도 최형우 못지않게 높다는 점이다.
나성범은 팀 타선이 전반적으로 가라앉았던 4월, 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계) 0.941을 기록하며 KIA의 득점 기회를 열었다. 다른 타자들이 살아난 5월에는 시너지 효과를 보여줬다. 2번 타자로 나서는 김선빈은 "나성범이 뒤에 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콘택트 위주의 스윙을 한다"고 했다. 4번 타자 황대인은 "(나)성범 선배님이 타점을 올릴 기회를 많이 열어줘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범호·김주찬·나지완 등 베테랑 타자들로 구성됐던 2017년 타선과 달리, 올 시즌 KIA 라인업엔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적생' 나성범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팀을 이끌고 있다. 김종국 KIA 감독은 "상대 팀 타자로 본 나성범은 실점 위기에서 피해야 할 선수였다. 같은 팀이 되니까 든든하다. 리더와 해결사 역할도 잘해주고 있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