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백(26)이 없는 KT 위즈 마운드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투수다.
엄상백은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고 있다. 불펜에서 개막을 맞이했지만,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부상으로 이탈한 뒤 선발진 공백을 메웠다. 대체 외국이 투수 웨스벤자민이 합류한 뒤 잠시 불펜으로 갔지만, 벤자민이 팔 통증으로 이탈한 뒤 다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엄상백은 올 시즌 등판한 16경기(11선발)에서 6승 2패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했다. 보직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좋은 투구를 보여줬다. KT도 엄상백 덕분에 외국인 투수 한 명 없이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엄상백은 '선발 알바'는 당분간 접는다. 벤자민이 26일 LG 트윈스전에서 복귀하기 때문이다.
선발로 잘 던지고 있던 엄상백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엄상백은 "컨디션과 심리 관리에 어려움도 있지만, 이제는 좋은 성적으로 말해야 할 연차다. 어떤 임무를 맡든 집중력 있는 투구를 보여줄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엄상백은 멀리 보고 있다. 올 시즌 남은 레이스에선 구원 임무를 맡더라도, 언젠가 선발진에 합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실제로 소형준과 배제성은 아직 군 복무 전이다.
엄상백은 상무 야구단(2020~2021년)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다. 그는 "야구선수가 아닌 내 모습에 자존감이 떨어지더라.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그저 야구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이전까지는 소위 '쇠질'에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한 단계 나아지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강도를 높였다. 마침 상무 야구단 내 개인 훈련 시절이 잘 갖춰져 있었다. 엄상백은 "입대 전에도 힘이 있을 때 더 좋은 투구를 하더라. 비로소 몸 관리법을 습득했다"고 전했다.
엄상백은 소속팀에 복귀한 뒤 근력 강화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선발진 다섯 자리에 공석은 없었지만, 대체 선발로 등한팔 때마다 존재감을 보여줬다. 현재 KT 국내 선발진은 리그 최고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영표·배제성·소형준과 소통하고 경쟁하며 시너지 효과까지 얻고 있다.
엄상백의 남은 시즌 목표는 KT의 2년 연속 통합 우승 달성이다. 스윙맨 역할을 하다 보니 승리와 홀드, 그 어느 기록도 많이 채우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 목표는 버렸다. 엄상백은 "그저 등판했을 때 잘 던지는 게 목표다. 팀이 올해도 우승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