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 ENM 제공 ‘박찬욱 스타일’이라고 하면 흔히 강한 노출이나 잔인한 장면이 떠오른다면,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이 같은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에게도 그렇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작업 방식을 취해야 했던 특별한 작품이었다. 최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헤어질 결심’의 제작 과정과 이 영화가 어쩌다 ‘박찬욱 순한맛’이 됐는지 들었다. 사진=CJ ENM 제공-오랜만에 국내 관객들과 오프라인으로 만났는데.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하는데 정말 좋았다. 영화를 보고 즐겼다는 감정이 전달됐다. 내가 사실 유머를 중시하는데, 내 영화를 보다 보면 전반적으로 심각하니까 ‘웃어도 되나’ 싶어 못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걸로 안다. 이번에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돼 반갑다.”
-사랑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의 주장르가 아닌 것 같은데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 전면에 나와 있다. “보기 나름 아닐까. 나는 ‘박쥐’를 찍을 때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찍을 때도 그 작품들이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마 전체적인 인상을 봤을 때 사랑 이야기가 배경처럼 보였던 게 아닐까 싶다. 이번 영화에서는 로맨틱한 감정과 그것을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고, 그 외의 다른 요소들은 뒤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심리 묘사 방법이 있나. “비결이 뭐 있겠나. 몇십억, 100억이 되는 돈이 들어가는 작품을 하고, 이 작품을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시간을 쓴다. 나 역시 2~3년 정도 되는 시간을 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작품의 가치라는 것은 몇 가지의 새로움, 독창성에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물론 새로움 그 자체에 가치를 둬서는 안 되겠지만. 새롭기 위해 새롭기만 한 것은 쉽다. 새롭되 말이 되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고, 관객들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중국 여성 서래가 중심에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캐스팅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영화 ‘색, 계’를 본 후부터는 정서경 작가와 내가 모두 탕웨이의 팬이 됐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탕웨이 이야기가 꼭 나왔다. 언젠가 같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원작이 없는 백지 상태에서 작품을 시작하는 것이다 보니 탕웨이를 먼저 중심에 두고 캐릭터를 창조했다. 때문에 탕웨이가 거절을 하면 시작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본을 먼저 완성하는 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 대충 줄거리를 만들고 배우부터 캐스팅했다. 탕웨이를 사무실로 초대해 2시간 동안 혼자 떠들었다.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연락 달라고 했는데 바로 답이 왔다. 하겠다고.”
-배우를 먼저 캐스팅했으니 배우의 색이 시나리오에 더 묻어났을 것 같은데. “탕웨이에게 약간 고집스러운 면이 있더라. 자기가 무언가를 정하면 별로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고 핵심으로 가는 면이 있다. 소신이 있다고, 원하는 게 있으면 실천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부분을 서래에게 담았다. 또 탕웨이가 무표정하게 있을 때는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숙성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얼굴을 화면에 많이 담고자 했다. 박해일의 경우 투명한 사람이다.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뇌나 딜레마를 겪으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 큰 동작이나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감정이 있다. 그런 면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사진=CJ ENM 제공-‘파란만장’에 이어 이정현과 다시 작업을 했다. “일단 ‘파란만장’ 때 출연해준 것이 고마웠다. 촬영 당일에 연락을 했거든. 원래 문소리 배우가 출연하기로 했었는데 임신을 하면서 몸을 많이 쓰는 장면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때 급하게 연락한 게 이정현이었다. 사실 어떠한 사적 친분이 없었는데 흔쾌히 수락해줬다. 그 고마움이 남아서 이번 영화에 모신 이유도 있다. 또 연기를 손쉽게 잘하는 타고난 배우라는 인상을 그때 받았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의 역이 주연이 아니다 보니 그 부분이 걸렸다. 이번에도 역시 흔쾌히 해준다고 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
-영화에서 통역 어플리케이션의 목소리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다. 의미가 있나. “영화에 등장한 어플리케이션은 가상의 것이다. 처음에는 남자의 목소리로 나오고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엉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핵심은 정확히 전달하지만. 영화가 2부로 넘어가면서 극 속 시간도 13개월여가 흘렀다. 그래서 어플리케이션이 발전됐고, 여성의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2부에는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들이 있기 때문에 여자의 목소리를 2부를 위해 아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박찬욱 표 어른의 사랑이라고 하면 다들 과감하고 노출도 생각했을 것 같다. 이런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간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이 그렇게 기대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겠나. (웃음) 기대하는 대로 하면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또 어른의 연애라고 하면 내밀한 감정이 더 어울린다고 봤다. 정사 장면이나 그런 것보다는 눈빛이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그런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