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안데스 산을 배경으로 치열하고 고독하게 삶을 관조한다. 영국의 산악가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의 생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터칭 더 보이드’는 출연 배우인 김선호 논란에 묻히기는 아까운 작품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는 ‘터칭 더 보이드’는 1985년에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산악가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는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페루 안데스 산맥 시울라 그란데의 서쪽 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했다가 큰 위험에 빠진다. 그만 조가 떨어지며 크게 다친 것. 조를 산에 남겨두고 베이스 캠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둘 다 잘못되더라도 같이 살 방법을 찾을 것인가. 삶과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이 이성적 판단과 원초적인 본능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이 러닝타임 내내 계속된다. 극의 시작은 조 심슨의 누나 새라가베이스 캠프에서 매니저 리처드와 조의 마지막 등반을 함께한 사이먼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새라는 두 사람에게 묻는다. “조는 정말 죽었나요?”, “도대체 구조되는 게 불가능한 산에 왜 오르는 건가요?”
한때 인간이 산을 오르며 살았을지는 모르나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는 행위는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을 ‘삶’으로 치환하면 ‘터칭 더 보이드’가 갖는 의미는 명확해진다. 조는 “산을 오르는 행위가 이상하지 않느냐”는 사이먼에게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답한다. 삶이 눈앞에 있기에 살아나가는 것. 자원이나 도움 없이 등반하는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은 본질적으로 혼자인 삶의 특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조 심슨 역을 맡은 배우 신성민은 20일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나 같은 경우 솔직히 산을 좋아하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클라이밍도 하고 등반 영상도 봤지만 그럴수록 산에서 멀어졌다고 밝히면서 “산에 오르는 행위를 내가 연기하는 것에 빗대어봤다. 무대에 올라와서 연기를 하는 게 내 삶이듯이 등반하는 분들도 어떤 특별한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산에 오르더라. 숨 쉬듯이 당연하게 산에 가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조 심슨도 그렇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처럼 그렇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프레스콜의 질문은 김선호에게 집중됐다. 지난해 전 여자 친구로부터 혼인빙자와 낙태 종용 폭로를 당한 이후 약 9개월 만의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복귀 심경, 자숙 기간 등에 대한 이야기로 질의 시간 대부분이 채워졌다.
하지만 김선호 본인도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많은 분들이 노력하면서 이 연극을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내가 누가 되는 것 같아 팀과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했듯 ‘터칭 더 보이드’는 김선호 사생활 논란하고만 연결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기울어진 세트를 배경으로 관객들에게 눈 덮인 안데스 산맥과 그곳에서 필사적으로 살아 돌아오고자 하는 등반가들의 치열함을 전달하는 이 작품은 2018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후 현지 매체들로부터 “인간의 끈질긴 생존력의 경이를 포착한 작품”,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은 채 지구 끝까지 여행한 느낌” 등의 찬사를 받았다. ‘터칭 더 보이드’는 이번이 한국 초연이다. 기술적 한계로 그간 무대에서 소개되기 어려웠던 ‘산악 조난’ 상황을 몰입형 음향 기술을 이용해 제대로 구현해냈다. 수평으로 넓게 펴진 화면에서 눈보라가 몰아칠 때면 실제 배우들이 무대에서 땀을 흘리며 연기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서서히 사라진다. 오히려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몰입감과 전율이 있다.
조 심슨 역에는 신선민 외에도 김선호, 이휘종이 캐스팅됐다. 조의 누나 새라는 이진희와 손지윤이, 조와 함께 시울라 그란데를 등반한 사이먼은 오정택, 정환이 연기한다. 마지막으로 극을 전반적으로 서술하는 리처드는 조훈, 정지우가 분했다. 리처드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연극을 한층 다채롭게 한다.
110분 동안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의 사투를 보여줄 ‘터칭 더 보이드’는 오는 9월 1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