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시즌 여자프로농구(WKBL) ‘연봉 퀸’은 아산 우리은행의 김단비(32·1m80㎝)다. 지난 5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인천 신한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전격 이적하면서 총액 4억5000만원(연봉 3억원+수당 1억5000만원)을 받게 됐다.
김단비의 이적은 WKBL 판도를 흔들었다. 지난 시즌 2위 우리은행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박지수가 버틴 청주 KB국민은행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김단비가 가세하면서 다음 시즌 KB와 우리은행의 우승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김단비는 마치 신인 시절로 돌아간 듯 훈련하고 있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이 김단비의 슛 동작을 보며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김단비 표정이 밝았다. 그는 “기분 나쁘냐고요? 전혀요”라며 웃었다. 김단비는 “감독님이 훈련 때마다 기본을 엄청나게 중시하고 강조한다. 오히려 ‘내가 이런 걸 잊고 살았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오늘은 ‘레이업 슛을 할 때 림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맞다. 어릴 때 배운 건데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단비는 2007~08시즌 데뷔해 15시즌간 신한은행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김단비는 데뷔 시즌부터 팀의 5시즌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김단비는 2014~15시즌부터 득점왕 3번, 리바운드왕 2번, 스틸왕 2번, 블록왕 1번을 기록했다. 총 네 차례 베스트5에 올랐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다재다능한 플레이로 ‘여자 르브론’이라 불린다.
최고의 자리에만 있었던 것 같은 김단비는 왜 이적을 선택했을까. 그는 “정체되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답했다.
김단비의 커리어를 보면, 팀 기록과 개인 기록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데뷔 이후 3시즌 정도는 출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리고 팀이 우승과 멀어지면서부터 개인 기록이 크게 좋아졌다.
2020~21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코로나19 대유행 등의 영향으로 WKBL은 외국인 선수를 쓰지 않았다. 이 기간 김단비의 개인 기록은 폭발적으로 향상됐고, 신한은행에는 ‘김단비가 전력의 50%’, ‘단비은행’ 같은 수식어가 따라왔다.
김단비는 “내가 공을 잡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득점부터 어시스트까지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내가 최고다’라는 자부심이 생기는 게 아니라 뭔가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는 것에 한계가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에 합류해 훈련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그는 “신한은행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팀이 돌아간다고들 했는데, 사실 내 마음은 좀 달랐다. 내 득점이 늘어나는 게 신경 쓰여서 득점 기회가 나도 일부러 어시스트를 했다. 새 감독님이 오시면 늘 선수들에게 ‘왜 단비만 쳐다보냐’고 말하는데, 그것도 부담이었다. 반면 우리은행에 오니까 감독님이 나에게 ‘더 공격적으로 해라. 주변에 주려고 하지 말고 네가 득점을 마무리해라’는 말을 해주시더라. 그게 편하고 좋았다”고 했다.
우리은행에는 베테랑 슈터 김정은(35)과 박혜진(32)이 있다. 젊은 가드 박지현(22)도 있다. 김단비는 “외곽에서 득점할 선수가 많기 때문에 내가 포스트 플레이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이 강조하는 수비도 팀에 잘 맞춰갈 것”이라고 했다.
프로 16년 차 김단비에게 ‘발전’에 관해 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뛰어드는 WKBL 선수들은 대부분 '미완성' 상태로 입단하기 때문에 프로 초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곤 한다. 프로 초창기에 김단비를 혹독하게 훈련 시켰던 지도자가 현재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둘은 2012년까지 신한은행 코치였다)였다.
김단비는 “진짜 징글징글하게 훈련했다. 그런데 나는 프로에서 처음 언니들과 부딪혔을 때 느낀 게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체력과 피지컬이 있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더라”면서 “프로 첫 3년간은 ‘완전한 성인의 몸’을 만드는 시기였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나는 프로에 데뷔했을 때 체력도 약하고 체격도 호리호리한, 힘없는 스타일이었다. 그냥 좀 빠르고 탄력 좋은 선수에 불과했다. 후배들에게도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첫 5년간 혹독하게 견딘 훈련, 그렇게 만든 체력 덕분에 지금 먹고사는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아, 이렇게 말하면 좀 꼰대인가”라며 웃었다.
김단비는 다가오는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언니, 박혜진, 나까지 다들 30대다. 우리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훈련이 힘들어도 얼굴 찌푸리지 말고 웃으면서 하자고 했다”면서 “아무래도 최고의 센터인 박지수가 있는 KB를 넘어야 우승이 가능하다. 과거 신한은행이 우승하던 시절, 상대가 지레 포기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은행은 KB를 상대하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다. 계속 부딪히면 승산이 보일 것이다. 강팀을 넘고 우승해야 더 짜릿하다. KB가 가져간 우승컵을 꼭 뺏어오겠다. 실력으로 뺏어오는 거, 정말 재미있지 않나”라며 자신 있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