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오른손 투수 안우진(23)은 지난 4월 14일 홈(고척스카이돔) NC 다이노스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 6이닝 1실점을 기록한 NC 에이스 드류 루친스키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두며 소속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경기 뒤 "나도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상대 에이스와의 맞대결을) 이겨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현재 최고의 투수인 김광현(34·SSG 랜더스) 선배와 꼭 붙어보고 싶다"며 경쟁심을 드러냈다.
안우진의 바람은 지난 3일 실현됐다. SSG와의 주중 3연전 2차전에서 김광현과 한 마운드에 올랐다. 키움은 지난달 31일 열릴 예정이었던 NC전이 우천으로 순연되며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했다. 김광현이 나서는 경기에 굳이 안우진으로 맞불을 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홍원기 키움 감독은 "상대 1선발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았다"고 순번대로 안우진을 SSG전에 내세웠다.
안우진은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사령탑의 기대에 부응했다. 연속 출루를 한 번(5회 초)밖에 허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추신수, 최정, 한유섬 등 SSG 주축 타자들로부터 모두 삼진 1개씩 잡아내기도 했다. 키움은 안우진의 호투로 잡은 리드를 지켜내며 3-2로 승리했다. 안우진은 시즌 11승(5패)째를 거뒀다.
김광현도 6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분투했다. 제구가 흔들려 볼넷 3개, 사구 2개를 내줬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앞세워 실점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안우진을 꺾진 못했다.
안우진은 김광현과 함께 KBO리그 대표 에이스로 군림한 KIA 타이거즈 양현종(34)을 상대로도 우세한 투구를 보여준 바 있다. 6월 29일 고척 KIA전에 등판,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키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두 선발 투수는 6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지만, 양현종이 7회 말 1점을 내주며 승부의 균형이 깨졌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김광현과 양현종은 제구력과 완급 조절로 상대 타자들을 상대했다. 반면 안우진은 베테랑들의 '노련미'에 맞서 '힘'으로 응수했다. 시속 150㎞대 후반의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른다. 김광현과 양현종도 구위로 선배 투수들을 제압한 때가 있었다. 최근 두 차례 펼쳐진 신·구 에이스 맞대결은 한국야구 마운드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안우진은 올 시즌 내내 '에이스 도장깨기'에 성공하고 있다. 데이비드 뷰캐넌(삼성 라이온즈) 찰리 반즈(롯데 자이언츠) 등 외국인 투수뿐 아니라 고영표(KT 위즈), 원태인(삼성), 구창모(NC) 등 현재 기량이 가장 뛰어난 국내 투수들과의 맞대결에서도 우세한 투구를 보여줬다.
유독 상대 에이스와 선발 맞대결이 많은 탓에 올 시즌 안우진이 지원받은 득점 지원은 경기당 2.50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안우진은 "난 박빙 승부가 더 편하다. 상대 투수가 잘 던지면, 내가 다시 마운드로 올라가는 간격도 짧아진다. (대기 시간이 짧은 게)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해는 한두 점 차 승부에서 역전을 당하는 날도 종종 있었지만, 올 시즌은 거의 없다. 상대 에이스를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 시절 통산 134승을 거둔 김원형 SSG 감독은 신인이었던 1991년 8월 14일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발 투수로 나섰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발은 '국보'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이 경기에서 9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쌍방울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역대 '최단 시간 경기' 공동 9위(1시간 48분)에 오를만큼 명품 투수전으로 남았다. 선 전 감독에게 판정승을 거둔 김원형 감독을 향한 관심도 쏟아졌다. 당시 해태 소속으로 이 경기를 지켜본 이강철 KT 감독은 "그 경기 뒤 김원형 감독이 '어린왕자'로 불린 것 같다. 이후 더 좋은 피칭을 했다"고 돌아봤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십수 년 동안 정상 자리를 지킨 투수들이다. 젊은 투수들은 이들과의 맞대결에서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안우진도 "(3일 SSG전에서) 김광현 선배님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점을 최소화하더라. 이전 등판(7월 29일 KT전 5와 3분의 2이닝 8실점)에 나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선배님께 그런 점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