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했다.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배우 임시완은 개봉작 ‘비상선언’에서 하와이행 비행기에서 생화학 테러를 벌이는 최악의 탑승객 류진석을 연기했다. 임시완이 맡았기에 이 악당은 관객들에게 더욱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고, 자칫 나쁜 놈에게 동정심이 갈 수 있을 일말의 기대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시완은 이 빌런을 두고 ‘왜곡된 가치관’, ‘절대악’으로 표현하며 어떠한 동정도 받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역할을 연기한 임시완조차 공감하지 않는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5년 만의 스크린 복귀인데 소감은. “전역 후 3년 만에 첫 개봉한 영화다. 그 3년 동안 쉬지 않고 연기를 계속하면서 영화를 3개나 찍었다. 그 중 ‘비상선언’이 먼저 개봉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개봉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작품을 찍기만 하고 개봉된 게 없었다. 오래 기다렸다.”
-팬들의 반응도 엿봤나. “반응이 재미있다. 눈이 돌아있다고 표현한 게 되게 기억에 남는다. 악역을 맡은 입장에서 큰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기분 좋게 (반응을) 봤다.”
-관객 리뷰를 보면 미친 연기, 순수하게 돌아버린 연기를 했다는 평인데 연기에 중점을 둔 것은. “역할의 분량에 아쉬움이 없다. 분량이 많았으면 압박감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연기하면서 어떻게 (연기)해서 나쁘게 보일까, 돌아버린 연기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안 하려 했다. 류진석은 이미 정상의 범주에서 할 법한 생각을 안 한다. 왜곡된 가치관에 의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로 보고 접근했다.” -대본을 보며 접한 진석은 어떤 느낌이었나. “진석의 첫인상은 절대악이었다. 연기에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악역이 주는 해방감이 있는데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어딘가에 실존하고 있는 인물 같았다.”
-악역과 선역을 어떻게 구분하며 연기하는가. “선한 역할은 으레 기대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걸 충족시켜야 하는 선이 있고 반드시 지켜줘야 미덕이 생긴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지켜져야만 아름다울 수 있는 선역이 있다. 그에 반해 악역은 비교적 표현의 방식, 폭이 굉장히 넓다고 본다. 내가 직접 연기할 때 좋아하는 빌런이 있는데 ‘어벤져스’의 타노스, ‘킹스맨’의 발렌타인 같은 역할이다. 악역임에도 본인의 신념이 명확한 악역을 좋아하다. 나 역시도 악역을 할 때 스스로 명확한 서사를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진석이 이유를 불문한 절대악인데 어떻게 이해와 분석을 하려 했나. “왜곡된 가치관에서 시작했다. 본인은 납득이 되야 하는, 그럴듯한 헛소리. 악역의 가치관을 누구한테 알려줄 필요는 없으나 개인적으로 진석의 서사를 만들었다. 과거가 있었고, 피해가 있었고, 놀림을 당했다는 서사. 그런 것들이 증폭돼서 사람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고 테러의 악행이 신성한 행위가 되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식의 논리인 서사를 만들어보려 했었다.” -스스로 만든 악역의 서사를 더 설명하자면. “어려서 외국 생활을 하는데 체격이 작고 당시에 영어도 안 됐을 거다. 발랄한 성격도 아니니 어느 집단을 가나 주눅이 들었을 거다. 그렇게 놀림과 폭행을 당하며 분노가 쌓였을 테지만 엄마에게 얘기도 못 했을 거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쌓였을 것이고 점점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을 거다. 건강하지 않은 고찰이 시작돼 저들이 미개한 사람이라 나는 이런 걸 당해도 된다고 버티면서 증오감을 쌓았을 거다. 그리고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들을 스스로 정화하려 했다. 급기야 신성한 정화작용을 본인이 행해야겠다고 귀결됐다는 서사를 만들었다.”
-여성에게 욕을 하고, 영어로 사상을 표현하는 이전과는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영어는 기술적인 노력이었다. 기능적으로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 영어의 경우 실제 교포처럼 표현해야 해서 발음 위주로 연습했다. 늘 쓰는 언어가 아니니 언어로 연기의 발목을 잡히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발음 연습을 많이 했다.”
-리허설 장면을 본편에 삽입했다고 들었다. 힘을 뺀 듯한 모습으로 연기한 듯한 느낌인데. “시사 때 감독님이 말해줘서 알았다. 수민(김보민 분)을 만나는 장면이 리허설 때 찍은 장면이었다. 실제와 비슷하게 의상까지 차려입고 리허설을 했는데 귀신같이 캐치해 그 장면을 썼다. 리허설은 실전이 아니니 긴장이 덜 된다. 마음 편하게 연기를 했는데 그걸 감독님이 느꼈나 보다.”
-전사(前史)가 들어간 장면이 있었다면 더 입체적으로 캐릭터가 묘사됐을까. “당연히 묘사하는 만큼 진석이 입체적으로 보여졌을 거다. 그런데 악역에 반드시 서사가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사 따위 없는, 서사가 공란이 악역을 맡는게 배우로서 창의적인 일이다.”
-하늘에서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는 인물이 신선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공포스러울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통수단인 비행기가 테러가 일어나며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공포로 바꾼다. 실제 저런 곳에 있으면 공포감이 어마무시하겠다고 생각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과 연기했는데. “영화 제안이 믿기지 않았다. 한재림 감독으로부터 미팅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의심했다. 크랭크인을 했을 때 드디어 하는구나 하는 꿈만 같던 작품이었다.”
-송강호가 ‘범죄도시2’의 손석구와 비교한 발언이 화제였다. 송강호에게 연기 칭찬을 받아 어땠나. “전 세계에서 인정 받는 선배들께 제일 큰 칭찬을 받았다. 굉장히 기분 좋고 뿌듯한 일이었다. 촬영장 가는 에너지의 근원이 됐다.” -김남길과 첫 호흡을 맞췄는데 촬영 때 어땠나. “슛이 들어가기 전까지 수다를 떨었다. 계속 장난치고 농담하는 연속이었다. 촬영 때도 되게 재미있게 찍었다. 얻어걸린 장면도 있다.”
-또 악역 제안이 들어오면 응할텐가. “새로운 결을 하는 것이 신선한 도전이다. 더 찾아다니고 싶다. 비슷한 결보다 확실히 새로운, 하지 않았던, 생각해보지 않았던 캐릭터가 이왕이면 더 좋을 것 같다.”
-머리를 기르고 있는데 더운 여름 관리는 어떻게 하나. “작품 때문에 기른다. 장발하면서 나도 몰랐던 새로운 스타일이 나온다. 여름에 관리 힘들다. 드라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드라이하면서 또 땀을 흘린다.”
-‘비상선언’을 어떤 관객들에게 추천하고 싶나.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느끼고 싶은 분들, 비행기를 탈 계획이 있는 분들이 보면 어떨까. 또 비행기를 자주 타는 분들이 보면 좀 더 공포의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