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투수 리드다. 개별 강점과 컨디션, 기운을 잘 파악하고 성과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포수 출신이자 역대 최초로 7시즌(2015~2021)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을 이끈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은 "허를 찌르는 공 배합보다 투수가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코스와 구종으로 유도하는 게 좋은 리드다. 투수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버릇이 있는 지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게 포수"라고 말한 바 있다.
KT 투수들은 든든하다. 주전 포수 장성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부터 6년째 KT 안방을 지키고 있다. 투수의 공, 경기 뒤 표정만 봐도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다.
5일 한화 이글스전도 그랬다. 시즌 10승을 노리던 선발 투수 고영표는 평소보다 의욕이 넘쳤다. 야수 실책 탓에 1·2루 위기에 놓인 3회 초, 그는 타자 노수광에게 희생번트조차 내주지 않기 위해 바깥쪽(좌타자 기준) 높은 공만 2개 연속 던졌다.
장성우는 2구째 공을 받은 뒤 일어섰고, 천천히 마운드로 향했다. 멋쩍은 표정을 짓는 투수를 향해 "왜 이렇게 열정적이냐"라는 첫마디를 건넸다. 1점도 내주지 않으려고 고영표가 지나치게 조심한다는 메시지였다.
고영표는 이어진 상황에서 노수광에게 희생번트를 내줬다. 후속 정은원을 뜬공 처리했고, 장타자 노시환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하주석을 땅볼 처리하며 실점을 막았다. 이런 전개는 장성우가 고영표에게 주문한 승부 전략이었다고.
장성우는 "고영표는 워낙 좋은 투수다. 그가 안타나 점수를 내주면 포수의 리드가 문제였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그날(5일 한화전)은 평소와 달리 여유가 부족했다. (노수광과의 승부에서도) 번트 타구를 직접 잡아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아내려는 의도가 보이더라. 그래서 마운드에 올라간 것"이라고 했다. 고영표는 장성우의 노련한 리드 속에 6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다. KT가 5-1로 승리하며 고영표는 10승(5패)째를 따냈다.
장성우는 지난 4일 NC 다이노스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은 김재윤에게도 "2~3년 전에는 더 충격적으로 진 경기가 많았다. 블론(세이브)이 처음이냐. 고개 숙일 필요 없다"고 무심한 듯 위로를 건넸다.
유망주 사이드암 투수 이채호는 5일 한화전에서 장성우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들었다. 고영표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그는 7회 초 선두 타자 최재훈과의 승부에서 연속 볼 3개를 던졌다. 5구째 중견수 뜬공을 유도하며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후속 두 타자도 연속 범타 처리했다.
장성우는 이채호가 볼카운트를 불리하게 만든 점을 짚어주며 "(마운드에) 올라오자마자 볼 3개를 연속으로 던지면 (결국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니) 그저 타자가 못 치길 바랄 수밖에 없다. 삼자범퇴로 막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더 집중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져라"라고 일갈했다. 이채호는 이강철 KT 감독이 필승조로 키우려는 투수. 장성우는 언젠가 박빙 상황에서 마운드를 지켜야 하는 이채호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길 바랐다.
장성우의 화법은 직설적이다. 후배들은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나 올바른 목표 설정이나 멘털 관리에는 그만한 묘약이 없다. 이강철 감독이 장성우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