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 올 시즌에도 한결같다. 24일 기준으로 정규시즌 97경기에 출전, 타율 0.292(329타수 96안타)를 기록했다. 장타율(0.520)과 출루율(0.404)을 합한 OPS가 0.924로 KBO리그 4위, RC/27도 8.34로 4위다. RC/27은 한 타자가 아웃카운트 27개를 모두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발생하는 추정 득점으로 올 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50명의 평균은 5.63이다. 최정은 홈런 1개만 더 보태면 이승엽(전 삼성 라이온즈) 박병호(KT 위즈)에 이어 역대 세 번째 '7년 연속 20홈런' 고지를 밟는다.
2006년 최정은 열아홉 살 나이로 홈런 12개를 때려내 '소년 장사'로 불렸다. 어느새 프로 18년 차로 30대 중반의 베테랑이 됐지만, 타석에서의 파괴력은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정경배 코치는 "(제주도 스프링캠프에서) 블라스트 장비로 측정했을 때 최정은 코어의 힘이 메이저리그(MLB) 최고 수준으로 측정됐다"며 "내가 알고 있는 수치로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보다 더 높았다. 압도적이었다"고 말했다. 블라스트 장비를 통하면 배트 스피드, 스윙 궤적을 비롯해 디테일한 타격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야구에서 파워풀한 배팅을 하기 위해선 회전력이 필요하다. 이 회전력은 코어 근육의 강력한 몸통 회전을 통해 만들어진다. 최근 운동 능력 발휘 순서인 키네마틱 시퀀스(kinematic sequence)가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 이유다. 하체부터 시작해 골반이 열린 뒤 몸통이 돌아가는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이어져야 한다. 정경배 코치는 "팔심이 세고, 하체만 잘 쓴다고 해서 몸통의 회전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강하게 치려면 (몸통의) 꼬임이 좋아야 하는데 최정의 경우가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최정의 타격은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weight shift system·중심 이동)이 아닌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rotational hitting system·허리 회전)에 가깝다.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은 MLB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내세운 타격 이론이다. 중심을 뒤에 남겨 놓고 골반을 강하게 회전해 강한 타구를 만들어낸다.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보다 움직임이 적어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든 선수가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강한 허릿심과 탄탄한 하체가 뒷받침돼야 한다. 코어 힘이 강한 최정에게는 딱 맞는 타격이다. 순간적인 몸통 회전으로 정확하면서 강한 타구를 외야로 날려보낸다. 정경배 코치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타격 습관을 지녀서 나이를 먹어도 (최정이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 현장에선 (선수들에게) 몸통 스윙을 하라는 얘길 자주 한다. 그렇게 하면 손으로만 타격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최정은 "전체적으로 다른 선수보다 힘이 약한데 그거(코어의 힘)라도 강해서 (다행이다.)…. 배팅할 때 힘을 잘 써서 (관련 수치가) 좋게 나오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최정은 올 시즌 손바닥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타격할 때 손이 강하게 울려서 정상적인 타격이 어렵다. 5월과 7월 월간 타율이 0.207, 0.204로 낮았던 이유다. 하지만 강한 코어의 힘을 바탕으로 슬럼프를 빠르게 탈출했다. 관심이 쏠린 8월 첫 16경기에선 '3할대 타율, 6할대 장타율'로 이상적인 타격 지표를 만들어냈다. 한유섬과 함께 SSG 중심 타선을 책임지며 팀의 선두 질주를 이끄는 중이다. 그는 "(시즌 초반) 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서) 보호 장구를 바꿔 써봤는데 스윙이 이상해지더라. 안 아프게 타격하려고 하다 보니까 안 좋은 습관이 나왔다"며 "지금은 보호 장구 없이 정상적으로 스윙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 장사'는 어느새 SSG를 대표하는 베테랑이 됐다. 정경배 코치는 "좋은 타격은 후배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