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종합격투기 UFC 최강자가 무너졌다. 그것도 다 이기고 있다가 기습적인 헤드킥 한 방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UFC 입성 후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무적행진을 이어오던 절대강자의 뼈아픈 첫 패배였다.
지난 21일(한국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비빈트 아레나에서 열린 ‘UFC 278 : 우스만 vs 에드워즈 2’ 메인이벤트. 경기 내내 경기를 압도한 쪽은 챔피언 카마루 우스만이었다. 우스만은 1라운드만 다소 밀렸을 뿐 2, 3, 4라운드를 지배했다. 5라운드도 마찬가지였다. 6번째 타이틀 방어는 기정사실로 보였다.
하지만 우스만은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했다. 레온 에드워즈의 기습적인 헤드킥에 오른쪽 관자놀이를 제대로 맞고 쓰러져 기절했다. 경기를 보던 모든 이들은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야구로 비유하면 경기 내내 뒤지던 팀이 9회 말 2아웃에 역전 만루홈런을 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기 내내 밀리던 레온 에드워즈(왼쪽)가 종료 1분을 남기고 하이킥을 적중, 챔피언인 카마루 우스만을 쓰러뜨리고 있다. [사진 UFC]
에드워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모두가 내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했지만 난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이제 챔피언 벨트는 이 ‘듣보잡’ 허리에 있다”고 큰소리쳤다. 반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스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변의 주인공 에드워즈는 "이제 챔피언 벨트는 이 ‘듣보잡’ 허리에 있다"고 큰소리쳤다. [사진 UFC]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의외성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이 당시 세계 최강 독일을 꺾을 것으로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조차 그랬다. 2009년 PGA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양용은이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이기고 우승한 것도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이변 중 하나다.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둔 고(故) 최동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당시 누구도 약팀 롯데가 절대강자 삼성을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특히 종합격투기는 ‘이변의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종합격투기에도 강자와 약자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종합격투기는 어떤 종목보다도 의외성이 크다. ‘KO’라는 제도가 있는 투기 종목 특성에 기인한다. 우스만을 꺾은 에드워즈 경우처럼 내내 밀리다가도 한 방으로 한 번에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종합격투기의 힘이다.
UFC에선 수많은 이변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13년 7월 7일 열린 ‘UFC 162’에서 벌어졌다. 당시 ‘극강의 챔피언’으로 불렸던 앤더슨 실바(브라질)가 크리스 와이드먼(미국)에게 당한 KO패였다.
당시 스탠딩 타격전에 자신감이 있었던 실바는 가드를 내린 채 상대를 도발했다. 그 순간 와이드먼이 펀치를 뻗었다. 상체 움직임이 유연한 실바는여유 있게 몸을 돌려 피하려 했다. 하지만 와이드먼의 펀치 거리는 생각보다 더 길었다. 얼굴에 펀치가 적중했고 실바는 그대로 쓰러졌다. 실바의 UFC 16연승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후 실바에게 불운이 겹쳤다. 5개월 뒤 열린 와이드먼과 가진 재대결에서 레그킥을 차는 도중 정강이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그의 격투 인생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조용히 선수 인생을 마무리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도 이변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2011년 12월 UFC 데뷔 1전에 불과했던 정찬성은 당시 페더급 최강자 중 한 명이었던 마크 호미닉(캐나다)과 맞붙었다. 호미닉의 직전 경기는 페더급 타이틀전이었다. 비록 아깝게 패했지만, 여전히 체급의 강자였다. 모든 면에서 정찬성이 한참 아래였다. 게다가 경기가 열리는 장소도 호미닉의 고국인 캐나다였다.
하지만 정찬성은 호미닉을 경기 시작 7초 만에 펀치 한 방으로 쓰러뜨렸다. 학창 시절 따돌림당하기 싫어 글러브를 꼈던 무명선수가 일약 UFC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반면 2018년 11월에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야이르 로드리게스(멕시코)와 경기에서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무리하게 KO를 노리다 기습적인 팔꿈치 공격에 실신 KO로 무너졌다. 정찬성이 그랬던 것처럼 로드리게스는 그 경기를 계기로 페더급의 톱랭커로 도약했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인문학자 한스굼브레흐트는 자신의 저서 『매혹과 열광』을 통해 “스포츠를 본다는 것은 어쩌다 일어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일어나리란 보장이 전혀 없는 일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계를 넘어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게 내버려 두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보는 것이 진정으로 팬들이 스포츠를 관전할 때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들은 스포츠에 인생을 투영한다. 의외성이라는 측면에서 종합격투기는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종합격투기에 더 열광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인지 모른다. 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