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최우수선수(MVP) 선정 소식을 들은 박찬호(27·KIA 타이거즈)가 놀라며 되물은 말이다. 소속팀 자체 시상식에선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10개 구단 선수 전체를 후보로 두고 뽑는 시상식에서 MVP를 수상한 건 처음이라고. 박찬호는 "얼떨떨하고 신기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찬호는 8월 넷째 주(23~28일) 뜨거운 타격감을 뽐냈다. 출전한 6경기에서 타율 0.522(23타수 12안타) 1홈런 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325를 기록했다. 타율·안타·OPS 부문 주간 1위에 올랐다. 중심 타선에 득점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 1번 타자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지난달 28일 두산 베어스전에선 5안타를 몰아치며 자신의 한 경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조아제약과 일간스포츠는 주간 MVP로 박찬호를 선정했다.
'반짝' 활약이 아니다. 박찬호는 후반기 출전한 34경기에서 타율 0.336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다. 전반기 막판 1번 타자로 전진 배치된 뒤 경기력이 크게 좋아졌다. 전반기까지 0.268이었던 타율은 8월 31일에는 0.290까지 올랐다. 박찬호는 "나는 1번 타자가 딱 맞다. 원래 신나면 야구를 더 잘한다. 현재 (타격)감도 좋고, 운도 좋다"며 웃어 보였다.
그동안 박찬호의 공격 기여도는 높지 않았다. 2020시즌엔 규정타석을 채운 리그 타자 중 가장 낮은 타율(0.223)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1시즌 타율도 0.246에 불과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자리 보전도 불투명했다. '제2의 이종범'으로 기대받던 신인 내야수 김도영이 입단했고,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종국 KIA 감독도 개막 전까지 주전 유격수를 확정하지 않았다.
박찬호는 묵묵히 도약을 준비했다. 지난겨울 5㎏을 증량해 파워 향상을 노렸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에게 맞는 타격 메커니즘을 찾았다. 개막 뒤 주전 유격수를 지켰을 뿐 아니라 경기를 치를수록 타격 성적이 좋아지며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만들고 있다. 박찬호는 오지환(LG 트윈스)과 박성한(SSG 랜더스)의 양강 구도였던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GG) 레이스도 뒤흔들고 있다.
박찬호는 담담하다. 데뷔 첫 3할 타율 시즌도 GG 수상에도 욕심이 없다. 그는 "특정 기록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그저 지금 타격감을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GG 레이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해서 시즌 내내 꾸준히 잘한 두 유격수(오지환·박성한)를 따라가는 건 무리"라고도 전했다.
박찬호는 자신의 위치와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는 "나는 공격에선 주축 타자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햄버거 빵 위에 올려진 참깨처럼 데코레이션같은 존재 말이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안정감 있는 수비다. 최근 공격력이 조금 주목받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수비를 잘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70점을 주고 싶다. 나머지 30점은 후반기에 채우겠다"라고 했던 박찬호는 "이 페이스가 이어지면 초과 달성할 것 같다. 120점을 노려보겠다"고 웃었다.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현재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과 소속팀 KIA의 승리다. 박찬호는 "한 경기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선다. 당연히 현재 순위(5위)에 만족하지 않는다. KIA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