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간절한 외침도 통하지 않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은 끝내 이강인(21·마요르카)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그의 첫 월드컵은 멀어지는 모양새다.
한국 축구의 미래인 이강인은 1년 반 만에 태극 마크를 달았다. 그간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는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도움 1위를 질주하는 맹활약으로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다.
세간의 시선은 이강인 출전 여부에 쏠렸다. 지금껏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와 거리가 멀다는 평을 받았고, 재능을 뽐내기에 기회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래도 올 시즌 이강인은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수비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한 공을 잡고 오래 끈다는 지적이 사그라들었다.
약점을 보완한 이강인이지만, 지난 23일 열린 코스타리카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실망한 듯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 무거운 표정으로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벤투 감독은 카메룬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이강인 출전 여부에 관해 “지켜봐야 한다. 경기 중 어떤 변화가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표팀보다 구단에서 기회를 받는 게 중요하다”며 동문서답했다.
카메룬전에서 베스트11 중 5명을 바꿨으나 이강인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교체로도 뛰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후반에만 교체 카드 5장을 활용했는데, 권창훈·나상호 등을 투입하는 익숙한 용병술을 펼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6만여 팬은 경기가 잠시 중단된 후반 35분 ‘이강인’을 연호하며 시위했다. 벤투 감독은 팬들의 외침을 끝내 외면했다.
경기 후 벤투 감독은 팬들의 외침에 관해 “귀가 2개라 듣지 않을 수 없다. 잘 들었다”고 답했다. 이강인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경기 중 팀에 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했다. 다른 옵션을 택하기로 했다. 전술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강인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감정을 꾹 누른 이강인은 “(팬들의 격려가) 선수로서 너무 감사했다.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이 크니 (뛰지 못해) 아쉽다. (경기 출전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소속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장’ 손흥민은 이강인을 위로했다. 그는 “선수로서 강인이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대표팀이) 강인이만을 위한 팀은 아니지 않은가. 오직 감독님만이 출전을 결정할 수 있다”면서도 “강인이가 이를 통해 성장하고 더 좋은 선수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완전체가 치르는 최종 모의고사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로써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출전 전망이 어두워졌다. 정예 멤버가 마지막으로 손발을 맞춘 장에서 철저히 배제됐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그간 황인범-정우영-이재성으로 이어지는 중원 라인을 고수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정우영 대신 손준호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 외에는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도 이강인보다 기동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지닌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을 선호한다.
다만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카타르행 티켓은 총 26장이다. 벤투 감독은 9월 2연전을 위해 월드컵 엔트리 수에 맞춰 선수단을 구성했다. 그런데 이번에 뽑힌 26명 중 이강인을 포함해 7명이 뛰지 못했다. 그가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활용될 가능성은 작지만, 최종 엔트리에는 포함될 일말의 희망은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