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를 이끌던 반도체 대장주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한때는 개미(개인투자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지금은 심리적 투자 마지노선까지 위태롭다. 시장은 완전히 관망세로 돌아선 분위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9일 전날에 이어 52주 최저가를 또 경신했다. SK하이닉스는 8만원대를 가까스로 지켰다.
삼성전자는 한 달 사이에 주가가 5만원 후반대에서 5만원 초반대로 10%가량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35조원 넘게 증발했다. 이날은 전날보다도 0.57% 내린 5만2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조만간 5만원대가 깨지는 '4만 전자'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삼성전자와 함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SK하이닉스도 부진의 늪에 빠졌다.
9만원 초반대였던 1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 8만원 초반대도 간당간당하다. 10% 정도 주가가 내렸고,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이날 52주 최저가(8만800원)를 다시 썼다.
코스피(종합 주가 지수)가 2년 2개월 만에 2200선이 붕괴하는 등 1개월간 약 10%의 하락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대내외 경제 악재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4.2%)과 현대자동차(-3.71%) 등 시총 상위 기업들의 주가가 비교적 선방한 것과는 달리 반도체 업황 악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글로벌 모바일 칩 설계 1위 업체 영국 ARM 인수 추진을 예고했다. 주가 반전이 기대되는 소식에도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중장기 가능성보다 단기 성적표가 더 중요한 지표로 작용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공급 초과와 단가 하락이 겹치며 당분간 암울한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공급망에 재고가 쌓이고 있지만 수요가 현저히 감소해 올해 4분기 D램 가격이 13~18%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PC와 서버 제조사까지 지갑을 굳게 닫았다. 이에 모바일용 이미지센서(CIS)로 공정을 전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결국 지속해서 메모리 반도체를 찍어내며 공급 과잉 해소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낸드플래시도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 15~20%의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
PC 브랜드의 하반기 수요는 상반기보다 훨씬 낮다. 이 와중에도 고도화한 적층(층층이 쌓기) 기술의 서버용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제조사 간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탄탄한 수익성에 목표 주가를 관대하게 설정했던 증권가도 당분간 시장 환경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22년 4분기를 재고 피크 아웃(정점 통과) 구간으로 전망한다. 지금부터는 듀레이션(원금 회수 기간)보다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며 "D램은 2023년 2분기 수급 균형에 도달하고 2024년 초과 수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SK하이닉스도 충북 청주 신규 공장 건설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2024년부터 서서히 회복하고 2025년에는 반등할 것이라고 관측한 바 있다.
김장열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가격 하락률과 출하량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 3분기 실적 발표와 4분기 가이던스(추정치)까지는 지켜보는 것이 좋다"며 "현 상황에서 옳은 길은 매우 정확한 저점을 한두 번 맞추는 게 아니라 수개월간 저점 분할 매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