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구단은 스프링캠프가 끝나면 신인급 선수 육성을 위해 캠프를 연장한다. 이를 익스텐디드 캠프(Extended Camp)라고 한다. 익스텐디드 캠프에선 유망주들에게 프로 무대에서 필요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도핑 교육은 물론이고 영어가 서툰 선수를 대상으로 언어 습득시간까지 별도로 할애한다. 이런 교육은 익스텐디드 캠프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루카스 레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익스텐디드 캠프 감독 겸 책임자가 가장 강조하는 건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했다. 인성을 갖춘 야구 선수를 육성한다는 명확한 방향이 설정돼 있다. 선수의 승격을 결정할 때 해당 선수가 구성원에게 신뢰받고 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기량은 물론이고 인성도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승격이 결정된다"는 레이 감독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매년 초 신인 선수에게 프로 선수의 덕목과 소양을 교육한다. KBO리그 대부분의 구단도 신인 선수에게 구단 아이덴티티와 프로 의식 및 윤리 의식 등을 인식시킨다. 이는 건강한 리그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013년 SK 와이번스 구단이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여했을 때 가이 콘티 당시 뉴욕 메츠 코치와 MLB 구단이 마이너리그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콘티 코치는 마이너리그 최저 레벨인 루키리그부터 싱글A까지는 어린 선수를 교육할 선생님 같은 코치를 배치한다고 했다. 선수 평가도 성적이 아닌 코칭스태프가 경기 당일 제시하는 미션 수행 여부가 기준이다.
예를 들어 투수의 경우 당일 초구 스트라이크를 60% 이상 던져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하면 경기 기록과 무관하게 이 목표를 달성했느냐가 평가의 핵심이다. 더블A부터 트리플A까지는 이기는 야구를 추구한다. 경쟁 체제로 개인 성적은 물론이고 '워크에식(work ethic·성실함)'까지 중요하다. MLB에 콜업될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강등된 선수에게는 재도전 의욕을 갖게 할 소통 능력을 갖춘 코칭스태프로 구성한다. 구단이 명확한 육성 방향을 갖고 마이너리그에 각 코치를 배치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프런트는 파트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구단 상황에 맞는 인물로 코치진을 꾸려야 한다. 코치도 1군에 적합한 '전략형 코치'가 있고 퓨처스(2군)에 필요한 '육성형 코치'가 따로 있다. 전략형 코치는 말 그대로 전략에 능통하고 선수의 매카닉적인 변화를 짚어낼 수 있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반면 육성형 코치는 이론적으로 선수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유망주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인내심도 중요한 덕목이다. KBO리그는 코치 자원이 풍족하지 않아 구단이 원하는 코칭스태프를 꾸리기 쉽지 않다. 최대한 1·2군에 적합한 코치진을 구성할 때 팀의 경쟁력이 생긴다.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 마이너리그 코치실 한쪽 벽면에는 선수 육성에 대한 다섯 가지 문구가 있다.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게 한다 ▶모든 과정에 목표를 제안하고 집중해 완성토록 한다 ▶매일 경쟁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도전 상황을 적극적으로 연습하고 스피디한 경기를 추구한다 ▶선수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한다 등이다.명확한 방향 제시는 어린 선수를 육성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 구단이 기대하는 선수 육성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필자는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연수할 당시 홈 경기 훈련을 관전했다. 시즌 초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앞서 평소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던 1루 코치가 외야수 윌 베너블과 이른 시간 수비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베너블은 전날 실책성 수비로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 굳은 표정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1루 코치와 베너블은 30분가량 진행된 대부분의 훈련 시간을 외야 잔디에 앉아 대화로 채웠다. 10분 남짓 진행한 수비 훈련에선 코치 주도 아래 집중력 있게 땀을 뺐다.
그때 필자는 "코칭에 있어 야구 기능을 단기간에 좋아지게 할 수 없지만, 마인드와 기분은 금방 바꿀 수 있다"는 호시노 센이치 전 주니치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베너블은 그해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MLB 데뷔 후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베너블과 소통한 당시 1루 코치는 현재 LA 다저스를 이끄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다.
"훌륭한 코치는 자신이 훌륭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훌륭함을 끌어내기 때문에 성공한다."『라커룸 리더십』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다. 구단은 항상 경쟁력 있는 선수단 구성에 갈증을 느낀다. 선수의 재능을 끌어내고 성장시키는 것은 코칭스태프의 역량이다. 하지만 육성 방향을 설정하고 능력을 갖춘 코치를 영입한 뒤 적재적소에 배치, 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건 프런트의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