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 한국과 일본의 경기 장면.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오는 11월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다.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한국 축구는 연이은 참패로 부끄러운 민낯도 함께 드러냈다. 연령별 대표팀이 일본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3월 A대표팀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일본과 친선전에서 0-3으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6~7월엔 16세 이하(U-16) 대표팀, 23세 이하(U-23) 대표팀, 다시 A대표팀까지 모두 0-3 완패를 당했다.
기량 차이가 뚜렷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각계 축구계 인사들로부터 원인을 들어봤다.
고등학교 축구 감독 A는 “저변이 다르지 않나. 수많은 선수 풀에서 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일본과 비교적 적은 선수를 대상으로 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한국 선수의 기량 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각 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 수를 살펴보면, 한국엔 9만7991명, 일본에는 82만6906명으로 차이가 크다.
축구 지도자들은 일본축구협회(JFA)의 ‘풀뿌리 시스템’에 대한 높은 이해와 교육 철학이 지금의 한일 축구 격차를 만들었다고 짚었다. 일본은 ▶대표팀 강화 ▶유스(청년층) 육성 ▶지도자 양성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삼위일체 시스템을 구성했다. 이로 인해 유소년, 연령별 대표팀, 프로가 기술과 패스를 중심으로 한 축구를 계승해 세계를 기준으로 한 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축구부 감독 B는 “일본에 가서 연습 경기를 하면 어느 팀과 맞붙어도 플레이가 똑같다. JFA에서 유소년 선수들에게 플레이를 어떻게 지도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공유한다고 하더라. 이게 무서운 점이다. 선수가 어느 팀에 가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감독이 바뀌어도 그들만의 장점을 살리는 축구를 할 수 있다”고 짚었다.
한국은 풀뿌리 시스템을 강화하기보다 눈앞에 놓인 성과, 즉 입시에만 목맨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의 한 고등학교 축구 감독 C는 “모든 선수를 잘 키우기보다 특출난 한두 명의 선수를 돋보이게 해 좋은 대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학교가 이런 선수 중심으로 축구를 한다. 대학 입시 요강이 '대회 몇 강 이상'이니까 그렇다. 이건 감독의 ‘밥줄’도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애로사항도 상당하다고 목청을 높여 말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란 2000년대 중반 엘리트 운동선수를 ‘운동 기계’가 아닌 학습권이 보장된 ‘학생 선수’로 키워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정규수업을 우선시하며 학업 성취를 일정 부분 달성하면서 대회·리그는 주말에 치르는 게 핵심 내용이다.
지도자들은 이 같은 제도로 훈련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결국 몇몇 선수에 전술이 집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프로구단의 유스 시스템을 총괄하는 관계자 D도 “공부도, 축구도 전부 잘해야 하는 것에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박지성도 최근 “가장 심각하다고 느낀 건 고등학교 선수들이 정규수업을 다 받으면서 훈련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지방의 한 대학교 감독 E는 “선수들도 학생이라는 신분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학업도 적정 수준에서 해야 하겠지만, (원한다면) 축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등학생 선수 정도면 진로를 축구 선수로 설정했을 시기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