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신인 지명 전략 회의에 참여했다. 당시 샌디에이고 구단은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관련 회의를 열었다. 단장을 중심으로 팜 디렉터와 모든 스카우트, 분야별 코디네이터, 데이터 파트 담당자들이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1라운드 지명을 결정할 때는 버드 블랙 당시 감독과 베테랑 투수 제이슨 마퀴스까지 회의에 들어와 의견을 나눴다. 선택에 신중한 모습이었다.
신인 지명 전략 회의는 하루 10시간씩 일주일간 쉬지 않고 진행됐다. 한 번에 2명의 선수를 설명하고 회의에 참석한 전원이 거수로 더 나은 선수를 선택했다. 전략 회의는 지역 스카우트들이 담당 지역의 우수 선수를 추천하고 그 선수의 기량과 성향에 관해 설명한다. 총 3회에 걸쳐 추천 선수를 설명하는데 이때 2개의 대형 화면에 관련 선수 영상이 나오고 2개의 스마트보드에는 세부 기록이 함께 띄워진다. 흡사 경연 대회를 방불케 했다.
당시 채드 맥도날드 샌디에이고 스카우트 디렉터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선수는 3년 안에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샌디에이고는 중심 타자 체이스 허들리와 카를로스 쿠엔틴의 공격력이 하락세를 보여 이를 대체할 거포형 타자를 지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선발된 선수를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육성한 뒤 MLB 주축 타자로 키워낸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그해 샌디에이고가 1라운드에서 호명한 선수는 미시시피주립대 출신 외야수 헌터 렌프로(현 밀워키 브루어스)였다. 렌프로는 구단 계획대로 입단 3년 차인 2016년 9월 21일 빅리그에 데뷔했고 2017년 주전으로 올라섰다. 신인 지명 전략 회의에서 논의한 육성 계획이 그대로 실행된 것이다. 이렇듯 MLB 구단들에 신인 드래프트는 구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행사고 신인 지명 전략 회의는 그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과정인 셈이다.
KBO리그는 올해부터 신인 드래프트가 전면 드래프트로 시행됐다. 전면 드래프트 제도는 향후 KBO리그 구단이 전력 평준화를 이루는데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구단의 지명 전략과 육성 계획은 팀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거다. 필자는 신인 지명 전략 회의에서 고민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걸 경험을 통해 실감했다. 스카우트팀이 파악한 자료는 지명 전략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최근엔 아마추어 경기장에도 트래킹 시스템이 구축돼 선수의 각종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라운드별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진행하며 드래프트를 준비한다. 선수의 '워크에식(work ethic·성실함)'이나 팀원에게 끼치는 영향력 등 스카우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스카우트의 경험과 데이터의 수치가 같은 선수를 지목할 때 선택에 확신이 생기게 된다.
수년 전 KBO리그 1군 선수를 조사한 결과 신인 지명 1차와 2차 1~3라운드 선수가 1군에 정착하는 데 3.04년이 걸리며 4라운드 이하로는 4.47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나왔다. 신인이 구단 계획대로 성장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구단은 주축 선수의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가 나타나기 전 해당 포지션의 육성 계획을 세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전력손실 없이 세대교체가 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팀의 현황을 파악하는 건 지명 전략의 중요한 요소다.
신인 선수를 프로에 연착륙시키는 교육도 필요하다. 필자가 몸담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구단은 신인 선수의 입단식부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구단이었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입단식에는 선수들의 가족까지 초청해 다양한 시간을 갖게 했다. 선수가 감사함을 전하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부모님께 입혀드리기도 했다. 2020년 입단식에서 "고생하신 부모님께 이제 야구 잘해 효도하겠다"는 말에 눈물 흘리신 최지훈 어머님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현재 국내에는 90개의 고교 야구팀과 43개의 대학 야구팀이 있다. 매년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선수는 1100명 안팎이다. 10개 구단 스카우트와 데이터 팀이 대부분의 선수를 파악하고 있어 '흙 속의 진주'가 나올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좋은 재능을 갖춘 선수를 뽑아야 한다. 전면 드래프트 시행으로 구단들은 동등한 환경에서 지명권을 행사하게 됐다. 어느 구단이 어떤 계획과 교육을 통해 신인 선수들에게 더 강한 동기부여와 더 올바른 마인드를 심어주는지가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