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전부이던 세 자매가 갑자기 내 것이 된 700억 거금을 두고 아쉬울 것 없는 상위 1% 권력층과 엮이면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는다.
가장 약한 존재였던 자매는 똘똘 뭉쳐 절대 악을 물리치고 700억을 손에 쥐는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막 내린 ‘작은 아씨들’은 박찬욱 감독의 파트너로 유명한 정서경 작가가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원작 드라마다. 일드 ‘마더’를 집필한 바 있는 정서경 작가는 매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로 안방극장에 미친 재미를 선사했다.
돈을 다뤘기에 팬데믹을 거치며 부익부빈익빈의 계급이 나뉘는 경험을 목도한 대중에게 드라마가 주는 울림은 매우 컸다. 정서경 작가는 “주식, 아파트, 코인 등 돈 이야기를 인사처럼 한다”고 입을 떼며 “나는 옛날 사람이라 돈에 관해 얘기하는 게 편하지 않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돈에 대해 대놓고 말하게 된 최근 사회 분위기에는 무언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서경 작가는 돈에 대해 접근하는 세대 간의 시선을 달리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요즘은 불안과 결핍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의 가정환경도 돈에서 비롯됐다. IMF 이후 도박에 빠져 필리핀으로 도망간 아빠, 첫째와 둘째가 어렵게 마련한 막내의 수학여행 비용을 훔쳐 아빠를 따라 필리핀으로 간 철없는 엄마. 세 자매의 가난은 자의가 아닌 부모로부터 대물림됐다. 돈에 쪼들리던 세 자매가 만난 박효린-원상아-박재상 가족은 대대로 부를 세습한 타고난 금수저로 극명하게 대비됐다.
정서경 작가는 “세 자매의 부모는 의자 뺏기, 사다리 오르기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다. 효린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부는 세습되는 경우가 많고 가난한 가정에서는 사다리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 많다.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인주(김고은 분), 인경(남지현 분), 인혜(박지후 분) 자매가 돈을 대하는 자세가 각기 달라 보는 재미를 더했다. 정서경 작가는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을 보여주며 다양한 공감대를 끌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인주는 내가 어려울지언정 동생들은 궁핍함 없이 부양하려는 K장녀의 책임감을, 둘째 인경은 사회 정의 실현에 집착하는 기자로, 막내 인혜는 돈에 찌든 가정에 넌덜머리가 나 그림을 친구에게 판 천재적인 실력의 화가 꿈나무로 그렸다.
그는 “인주는 가족 중심적인 인물이다. 처음 20억이 생겼을 때 아이스크림, 화장품 등 그동안 사지 못했던 것을 잔뜩 산다. 하지만 많은 일을 겪고 300억원을 받았을 때 돈의 의미와 무게를 알아 달라졌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인경은 가난하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인혜는 가난하다는 상황 자체를 초탈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가난과 자신을 엮어서 설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극 중 인주는 돈이 생기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한강이 보이는’ 서울의 아파트를 사고 싶어했다. 정서경 작가는 젊은 세대의 돈에 대한 관점을 반영해 대사를 정리했다.
그는 “내가 자랐던 시대에서 돈은 풍요를 의미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돈은 생존의 본질이 된 것 같다. 드라마에서 이 점을 반영해 부동산으로 돈을 표현하려 했다. 자기 집을 갖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사는 세대에 대한 공감대를 표현하고 싶었다. 돈은 이들에게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안정감을 주는 물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절친한 박찬욱 감독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반응을 물었더니 정서경 작가는 “서로 대본을 보여주는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 현장에서 대본을 보내달라고 했다. 6~8부 대본을 보냈는데 예상과 달리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이후 토론토 영화제에서 만났는데 매회 방송 당일 챙겨보고 있다고 했다”면서 미소 지었다. 정서경 작가가 상상하며 집필한 여러 장면 중 가장 소름이 돋았던 신으로 11회 말미 죽은 줄 알았던 화영(추자현 분)이 재판에 출석했을 때를 꼽았다. 그의 말로는 “화영언니가 들어올 때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또 시청자들보다 모든 장면을 재미있게 봤다면서 1부와 8부의 마지막 신도 소중히 여겼다.
또 다른 드라마의 재미로는 방송 내내 오인주와 최도일의썸만 타는 밀당이었다. 한 번도 마음을 내놓지 않고 끝나 시청자들의 원망의 목소리도 있었다. 정서경 작가는 의도하고 작정해 둘의 관계를 보여줬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 했던 건 아니고 감독님이 그런 장면을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써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일이 ‘또 봅시다’라고 하는데 원래 계획한 일은 해내는 사람이니 결국 다시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