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33·키움 히어로즈)는 지난 2월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됐다. 4월 예정된 아내 출산을 이유로 '별도 훈련'을 구단에 요청한 탓이었다. 키움 주요 선수들이 전라남도 고흥과 강진에서 1·2차 캠프를 소화하는 동안 요키시는 2군 훈련장이 있는 고양과 1군 홈구장이 있는 서울 고척돔을 오가며 따로 몸을 만들었다. 외국인 선수가 캠프를 빠지는 이례적인 상황.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홍원기 키움 감독도 "코치 생활을 하면서 하나의 지론이 생겼다. 외국인 선수가 3년 차까지 괜찮더라도 4년 차 때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회상했다.
요키시는 올해로 감독이 우려하는 'KBO리그 4년 차'였다. 매년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에이스'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개별 훈련 요청에 구단도 적잖게 당황했다. 자칫 한해 농사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 논의 끝에 선수 의견을 존중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요키시의 아내(케일라 요키시)가 병원을 계속 오가야 한다"며 "요키시는 그냥 맡겨놔도 되는 선수"라고 신뢰했다. 요키시는 2020년 코로나19 탓에 개막일이 미뤄지면서 캠프를 마친 뒤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인 훈련을 하다 입국했는데 그때도 큰 문제가 없었다. 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를 정도로 활약했다.
요키시는 순항했다. 이번 시즌 4월 한 달 동안 5경기에 선발 등판, 2승 2패 평균자책점 2.27을 기록했다. 시즌 내내 3점대 이하 월간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다. 그 결과 10승 8패 평균자책점 2.57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 키움의 포스트시즌(PS) 진출에 힘을 보탰다. KBO리그 한 시즌 개인 최다인 185와 3분의 1이닝을 소화해 안우진과 함께 막강한 선발 원투펀치를 형성했다. 4월 중순에는 예정된 날짜에 둘째를 득남하기도 했다.
키움은 요키시와 안우진이 무려 46번의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합작, 불펜의 부담을 덜었다. 요키시는 "(1군 선수들과 분리돼 몸을 만들어) 불안한 점은 없었다. 2군 캠프에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며 1군 스케줄을 그대로 따랐다. 같은 운동을 했기 때문에 문제 없었다"며 "가족이 중요하고 항상 아내를 옆에서 돌봐야 하지만, 팀 또한 중요하다. 난 공과 사를 잘 구분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단 관계자는 "요키시는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투수조에서 리더 역할을 잘해준다"며 "자기 관리가 투철해서 코치진에서 믿을 수 있는 선수다. 팀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칭찬했다.
요키시는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첫 시즌인 2019년 한국시리즈(KS)를 뛰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난 22일 끝난 KT 위즈와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에선 2경기 등판해 평균자책점 2.45(7과 3분의 1이닝 2실점)를 기록했다. 3년 만에 PS 등판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요키시는 24일 시작한 LG 트윈스와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에선 안우진과 함께 선발진을 이끌어야 한다. 시리즈 1차전을 패한 키움으로선 2·3차전에서 요키시와 안우진이 어떤 활약을 펼쳐주느냐가 중요해졌다. 감독의 우려를 불식시킨 '4년 차 외국인 투수' 요키시가 PO 선발 등판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