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장애에 묻혔던 이동통신 3사와 글로벌 CP(콘텐츠 사업자) 간 망 사용료 지급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국정감사 기간 국회에서 충분히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만큼, 현재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의 통과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와서다.
인기 유튜버를 앞세워 반대 주장을 펼친 구글 등 CP 쪽으로 승기가 기우는 듯했지만, 이용자를 볼모로 한 협박성 발언에 비난이 쏟아지면서 다시 싸움은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통 3사를 향한 젊은 세대의 불신은 여전하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매달 요금을 빼가는 모습이 미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유튜버 앞세워 여론 흔든 구글
24일 구글이 참여를 독려한 사단법인 오픈넷의 망 사용료 법안 반대 서명에는 26만명 넘게 몰렸다.
수개월 전만 해도 망 사용료 이슈는 이용자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구글이 자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상단 광고까지 할애하며 '망 사용료는 이통사가 요구하는 부당한 통행세'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시안 보스' '대도서관TV' '고누리' 등 구독자 100만명 이상의 채널이 망 사용료를 비판한 영상을 광고 표시를 달아 송출했다.
여기에 글로벌 최대 게임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지난달 국내 서비스 화질을 1080p에서 720p로 낮추기로 하자 이용자 체감도가 확 올랐다. 구글을 지지하는 유튜버들도 썸네일(미리보기 이미지)에 '트위치 사태'를 걸고 앞다퉈 영상을 업로드했다.
한 유튜버는 "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데 왜 비용을 내지 않느냐는 논리로 정치인들이 이통사와 편을 먹고 애국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며 "만약 한국에서 최초로 통과하면 향후 100~200년은 욕먹을 법안"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망 사용료 법안에 특히 민감한 이유는 미래 수익 구조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망 사용료 지급 의무화를 우려하며 자사 블로그에 "법 개정이 이뤄지는 경우 유튜브는 한국에서의 사업 운영 방식을 변경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망 사용료 부담을 크리에이터나 시청자에게 일부 전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를 두고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국감에 출석한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에게 "사실상 불이익을 예고한 것이다. 이건 협박이다"고 강조했다.
김경훈 사장은 망 사용료 법안 통과 시 화질을 낮추거나 창작자 광고 수익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아직 대응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논의에 참여할 뿐이다"고 했다.
김 사장은 구글 앱마켓과 유튜브 등 주요 수익창출원은 해외에서 사업을 지휘하고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유튜브 역시 별도 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오픈넷 반대 서명도 직접 지시하지 않고 보고만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픈넷은 사실상 구글코리아가 만든 단체인 것으로 전해졌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오픈넷이 설립된 2013년에 구글코리아가 유일하게 3억원을 후원했다. 올해도 2억2000만원을 뒷받침했다. 구글코리아가 2020년 비영리 단체 등에 지원한 연간 기부금은 4000만원에 불과하다.
망 사용료를 논하기에 앞서 국내 사업 매출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글코리아는 외부감사법에 따라 매년 한 차례 실적을 공시한다. 2021년 매출은 약 2900억원으로 표시했다. 한국에서는 광고와 하드웨어 판매 사업만 영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취합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7개 카드사에서 발생한 구글 앱마켓 매출만 1조9700억원에 달한다. 앱마켓 실적은 사업을 영위하는 구글 싱가포르로 잡히기 때문인데, 조세 회피가 목적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망 사용료로 배불리기' 눈총에 억울한 이통사
국회의 질타에 앞서 이통 3사도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글로벌 CP에 맞불을 놨다.
로슬린 레이튼 덴마크 올보르대 박사는 지난 20일 열린 세미나에서 "온라인 행동주의는 여러 활동의 조합으로, 다른 영역에서는 그저 마케팅 중 하나로 여겨지겠지만 우리 분야에서는 특정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애플·아마존 등 거대 IT 기업들의 여론 조작 활동은 이미 수년 전부터 성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15년 인도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이던 구글이 페이스북의 시장 진입을 막은 사례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현지에 무료 통화·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었는데 광고 시장 독점을 노린 구글이 엘리트 집단 등과 협업해 '무료 페이스북은 인도의 종말'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을 펼쳤다.
이처럼 구글은 1위 동영상 플랫폼과 비영리 단체 등을 활용한 지지 호소 전략에 능하다는 평가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유튜브 시청자가 늘어날수록 이통사는 유지보수에 투자해야 하고 구글은 수익을 보는 차별적 구조다. 글로벌 CP가 차지하는 트래픽은 절대적이다"며 "십시일반 모으자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망 사용료가 국내 통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묻자 "(금액이 많지 않아) 획기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양심적인 투자는 일어날 것"이라며 "이를 수익화하면 당연히 욕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매년 각각 700억원, 300억원을 망 사용료로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1년 10~12월 기준 우리나라 트래픽 현황에서 구글·넷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4%로 압도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3% 미만이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정하면 해외 CP가 내야 할 망 사용료는 국내 플랫폼보다 훨씬 많겠지만, 그래도 이통 3사가 매년 투입하는 CAPEX(시설투자)와 비교할 수준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