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나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를 통해 축구 팬들은 외국 국가를 들을 기회가 꽤 많다. 잉글랜드의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Queen)’,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 이탈리아의 ‘마멜리 찬가’는 국내 축구 팬에게도 익숙한 노래다. 여기에 하나 더. 독일 국가인 ‘독일의 노래(Song of Germany, Deutschlandlied)’도 빼놓을 수 없다.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독일 국가의 멜로디는 상당히 익숙하게 들릴 수 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의 현악 4중주 ‘황제 찬가’에 가사를 붙였기 때문이다.
찬송가 ‘시온성과 같은 교회’와 멜로디가 같기 때문에, 교회에서 들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가로 유명한 존 뉴턴이 하이든의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들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부를 만한 찬송가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에 널리 알려진 곡조나 민요 가락에 노랫말을 바꿔 붙여 찬송가를 만들었다. 이를 콘트라팍툼(contrafactum) 찬송가라 칭했고, 현행 찬송가의 모체가 된다.
하이든의 곡에 황제를 칭송하는 가사가 붙여져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보우하소서'라는 이름으로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트리아 황실의 국가였던 이 노래는 19세기 중반에 새 가사가 붙여진다. 시인 팔러슬레벤이 같은 멜로디에 황제 대신 독일을 찬양하는 가사를 붙여 ‘독일의 노래’를 만든 것이다.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독일에서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1922년 독일의 노래를 국가로 지정했다. 하지만 1933년 등장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정부는 독일의 노래 1절을 제창한 후 나치당의 노래였던 ‘호르스트베셀의 노래(Horst-Wessel-Lied)’를 이어 부르게 했다. 기존 독일 국가에 나치 당가가 합쳐진 혼합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2차 대전 패망 후 연합군 군정 기간에는 ‘나는 헌신했도다’가 독일에서 임시 국가로 쓰였다. 이 곡은 어여쁜 장미라는 이름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독일 민요이자 찬송가이기도 하다.
1949년 출범한 서독 정부는 예전에 사용했던 독일의 노래를 계속 국가로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1, 2절의 가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패배로 영토를 많이 잃은 독일은 1절 가사에 나오는 지명 상당수가 더 이상 자신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1절은 나치 독일을 연상시켜 터부시되는 분위기였다. 2절은 1절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가사와 술을 권하는 구절 등으로 인해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서독 정부는 1952년부터 3절만 공식 국가로 인정했다.
한편 동독은 ‘폐허에서 부활하여’란 이름으로 알려진 새 국가를 채택한다. 동독은 그들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1988 서울올림픽에서 메달 순위 2위를 기록했고, 당시 서울에서는 동독 국가가 여러 번 울려 퍼졌다.
1990년 마침내 독일은 통일했다. 논의 끝에 통일 독일의 국가는 서독의 국가였던 독일의 노래로 결정된다. 독일의 노래는 19세기부터 널리 불린 역사적인 노래였기 때문에, 동독 지역 주민들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에서 듣는 독일 국가는 ‘독일의 노래 3절’이다. 하지만 네오나치 같은 극우 단체들은 집회에서 1절을 제창할 때도 있다.
독일대표팀은 그들의 국가가 연주될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전통적으로 독일팀은 국가 제창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입을 다물고 있는 선수도 있고, 국가를 제창해도 나지막이 부르는 정도다.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은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금지 됐다. 동서로 분열된 가운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서독이 우승했지만, 그들은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없었다. 전범국이라는 과거 때문에 서독에서는 애국심 표현이 자제됐기 때문이다.
통일 전 서독에서는 공공건물과 군복을 제외하면 국기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다르게 국기가 새겨진 자동차 스티커나 티셔츠도 없었다. 심지어는 1990년대에도 학교의 깃대에는 국기가 없었고, 학생들은 국가를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독일이 2006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이들의 애국심 표현에도 변화가 시작된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통일 독일이 첫 우승을 거두자, 감격한 독일인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국기를 흔드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는 아직 독일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독일이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후 트위터에는 ‘나치’ ‘히틀러’ 같은 독일과 관계된 부정적인 단어가 급증했다고 한다.
역사에 덜 얽매이는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나이든 독일인들은 과거의 무게를 지금도 짊어지고 있다. 월드컵이 불러온 민족주의 쇼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은 거리에 만연한 독일 국기의 철거를 요구했고, 국가도 제창하지 않았다. 독일을 두 번이나 세계대전에 휩싸이게 한 국가적 자존심이나 민족주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독일인은 애국심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적으로 국가를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유산 때문에 이들은 영국이나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애국심을 표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