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BO리그 타격왕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의 찬스 집중력은 남다르다. 득점권 타율이 0.387로 4할에 육박한다. 그는 "지난해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 이후 찬스가 와도 떨리지 않는다. 약간 긴장하는 느낌이 없어진 것 같다"며 "어릴 때는 찬스에 (타석이) 걸리면 흥분하고, 급해졌다.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지금은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면서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영웅 군단'은 포스트시즌(PS) 경험을 먹고 자란다. 키움은 2018년 이후 5년 연속 PS를 치르고 있다. 올해는 정규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에 직행했다. 준PO에선 KT 위즈와 시리즈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PO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준PO 5차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송성문은 "가을야구를 경험하면서 정규시즌을 좀 더 여유 있게 치를 수 있었던 거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경기를 뛸 수 있다"며 PS 효과를 전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PS 경험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PS 한 경기의 에너지는 정규시즌 10경기, 15경기의 값어치가 분명하다"며 "뛰는 중압감 자체가 다르다. 이걸 경험한다는 건 대단하고, 그런 경기에서 잘한다는 건 더 대단한 거"라고 말했다. 홍원기 감독은 두산 베어스 소속이던 2001년 현대 유니콘스와 PO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1차전 8회 말 결정적인 수비 실책으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2~4차전 3경기 연속 홈런으로 팀을 한국시리즈(KS)로 이끈 바 있다.
PS은 남다른 집중력을 갖게 한다. 3000타석 기준 KBO리그 통산 타율 1위 이정후도 다르지 않다. 2017년 입단한 이정후는 첫해를 제외하고 빠짐없이 가을야구를 경험하고 있다. 매년 PS를 통해 성장했는데 지난해 WC 결정 1차전은 더 남달랐다. 그는 1만2422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9회 초 결승 2타점 2루타를 때려내고 포효했다. 홍원기 감독은 "못한다고 낙인이 찍히면 계속 그렇게 된다. 큰 경기에서 강하다는 수식어가 붙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긴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멘털"이라고 했다.
키움은 올 시즌 소속 선수 평균연령이 26.6세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 외야수 이용규(37)와 포수 이지영(36)을 제외하면 주축 자원 중 30대 중후반 선수를 찾기 힘들다. PS 엔트리도 마찬가지다. 준PO에서 유격수로 기용한 신준우(21)와 김휘집(20)은 2020년과 2021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자다. 필승조로 준PO 3경기를 뛴 김동혁(21)과 주전 마무리 김재웅(24)의 나이도 많지 않다. 홍원기 감독은 LG 트윈스와 PO에선 올해 입단한 오른손 투수 이명종(20)을 엔트리에 투입하기도 했다.
가을야구에선 '영웅 군단'이 더 젊어졌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PS 경험을 통해 선수들이 성장한다. 승패를 떠나 키움이 얻는 가장 큰 소득이다. PO 1차전에서 결정적인 콜 플레이 실수를 한 김휘집은 PO 2차전을 앞두고 "긴장은 딱히 안 된다. 타이트한 상황에서 수비하면 자신감이 필요한 거 같다"며 웃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나. 그건 육성의 첫째 조건이기도 하다"며 "정규시즌을 치르는 것과 비교하면 PS은 '정규시즌 5경기' 그 이상의 경험치가 쌓인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경기를 뛴) 선수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