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삼성전자의 반도체 불황 탈출구는 결국 '투자'였다. 경쟁사들이 투자 예산을 줄이고 최신 공정 전환을 늦추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과감히 페달을 밟기로 했다. 언젠가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27일 진행한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단기적 수급 균형을 위한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반도체업계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우려에 투자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나섰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를 약 10조원 후반대로 예상하는 올해보다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생산량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수급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수요 부진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는 올해 CAPEX(설비투자)를 목표치의 90%만 집행하기로 했다. 미국 인텔은 비용 절감을 위해 영업·마케팅 인력 약 20%를 감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블룸버그통신이 전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이런 반도체 한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22년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76조7800억원으로 올해 3개 분기 모두 최대를 기록했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10조8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39% 감소했다.
반도체만 4조9500억원이 줄었다. TV·가전·모바일 등 DX(디바이스 경험)부문도 6200억원 덜 벌었다. 디스플레이(SDC)와 전장(하만)이 그나마 선전했다.
시장 위축으로 고객의 주문이 급격히 줄면서 재고도 쌓이기 시작했다. 올해 3분기 기준 전사 재고는 57조3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5조2000억원이 늘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 고객들은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재고 조정에 들어갔다.
주요국 금리 인상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면서 모바일 디바이스와 가전 신제품 등 비필수품 구매는 뒤로 밀리고, 러시아 제재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유럽 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시련보다 미래의 기회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한진만 부사장은 CAPEX와 관련해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고 업황과 연계해 설비투자를 유연하게 운영한다는 기조는 동일하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이익 기반을 만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설비투자는 업계 최초로 15나노부터 EUV(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하는 등 첨단 기술 도입에 따른 것이 상대적으로 크다. 평택 3기와 4기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면서 작년 대비 CAPEX가 원화 기준으로 증가했다"며 "설비투자를 조정해도 (내년) 전체 CAPEX 변동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방향성을 반영하듯 삼성전자는 올해 CAPEX 규모를 약 54조원(반도체 47조7000억원·디스플레이 3조원 등)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의 48조2000억원보다 늘어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