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대표팀은 27일(한국시간) 코스타리카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E조 2차전에서 0-1로 패했다. 1차전에서 독일에 승리해 올라갔던 기세가 단숨에 꺾였다.
1차전과 달랐던 건 경기 결과 말고도 있었다. 1차전에서 승리만큼 주목받았던 건 일본의 매너였다. 이날 일본 관중들은 파란색 쓰레기봉투를 들고 좌석 아래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담았다. 경기장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자리 주변을 청소하는 건 일본 축구 서포터스의 오랜 전통이다.
미국 ESPN은 "일본 (대표팀뿐 아니라) 관중 역시 월드컵의 완벽한 손님이었다. 여러 대회에서 계속해온 멋진 전통을 재현하면서 일본이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에서 독일에 거둔 충격적인 승리를 축하했다"고 전했다. 미국 폭스 스포츠도 "스포츠 최고의 전통"이라며 일본 관중의 모습을 조명했다.
이들의 매너만큼은 코스타리카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관중은 석패를 당한 후에도 마찬가지로 봉투를 들고 청소에 나섰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이 사람들이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승자"라며 "일본 팬들은 심지어 일본 경기가 아닌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을 보고도 경기장을 청소했다"고 설명했다. FIFA 역시 공식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이기든 지든, 언제나 존경스럽다. '지구를 구합시다(SaveThePlanet)' 캠페인을 도와준 일본 팬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관중의 이면도 드러났다. 코스타리카전에 앞서 일본 관중석에는 욱일기가 등장했다. 욱일기는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태평양 전쟁 시기를 상징하는 군대 깃발이다. 군국주의 시절 아시아 침략 전쟁을 벌이며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피해를 입었던 한국·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적·정치적 이유로 욱일기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이날 일본 응원단은 욱일기를 난간에 걸어두려다 안전요원에게 제지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욱일기를 들고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역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해 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8일 개인 SNS를 통해 "FIFA가 드디어 욱일기 응원을 공식적으로 제지한 것이라 아주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욱일기는 지속해서 국제 스포츠 대회 때마다 등장해왔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때는 대회 전 욱일기 사용이 허가돼 논란을 빚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에 따라 정치적인 표현을 제재한다. 그러나 스포츠클라이밍 남자 콤바인 결선의 볼더링 3번 과제 암벽으로 욱일기 모양이 나왔다. 외신은 이를 두고 욱일과 같은 뜻인 '라이징 선(Rising Sun)'이라 불렀고,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도 이를 욱일기 모양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월드컵 때도 등장했다. 지난 2018년 러시아 대회 때는 FIFA가 공식 인스타그램에 일본 욱일기 응원 사진을 올렸다가 한국 등의 항의를 받고 내렸다. 당시 관중석에서도 욱일기가 등장했다. 세네갈과 맞대결을 펼친 H조 2차전 때 걸렸다. 1-2로 밀리던 후반 33분 혼다 게이스케가 극적으로 동점 골을 기록하자 일부 관중이 대형 욱일기를 꺼내 들고 기뻐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카타르 월드컵은 욱일기 사용 외에도 개막 전부터 숱한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왔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의 저임금 혹사,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원 러브' 완장 사용 금지,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 여부, 라커룸에서 깃발로 코소보를 비난한 세르비아 대표팀 등이 연이어 화두에 올랐다.
정치적 논란은 주최 측과 선수단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5일 잉글랜드와 미국의 조별리그 B조 경기에서는 십자군 복장을 한 잉글랜드 팬들이 등장했으나, 입장을 제지당했다. 종교 침략 전쟁의 성격을 띤 십자군 전쟁은 중동 관중들의 입장에서는 하켄크로이츠·욱일기처럼 불쾌감과 정치적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주제다. FIFA는 영국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아랍 지역의 입장에서 십자군 복장은 무슬림에게 불쾌할 수 있다. FIFA는 모든 행사, 활동에서 차별 없는 환경을 꾸리고 다양성을 키우려 한다"고 전했다.
서경덕 교수도 이 점을 주목했다. 서 교수는 "사실 이 보도를 보고 약간 설렜다. FIFA가 이젠 욱일기 응원도 제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FIFA의 욱일기 제지는 아시아 축구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존중하는 너무나 적절한 조치였다고 판단한다"며 이번 일로 인해 일본은 국제적 망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다시는 욱일기 응원을 펼치면 안 된다는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