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빌 리 테네시 주지사가 LG화학 양극재 공장 설립 MOU를 체결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국내 기업도 서둘러 북미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IRA의 적극적인 대응이 전기차 배터리와 이차전지 소재기업의 향후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에 양극재 공장 설립을 확정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국내 기업 최초 미국 시장 양극재 공장 설립
1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양극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북미 시장 공장 증설을 발표하고 있다. 양극재는 배터리에 리튬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으로 배터리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이차전지 소재 중 양극재의 시장 규모가 가장 크기도 하다.
증권가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 규모는 2022년 104만대에서 2026년 520만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북미 배터리 시장 규모도 2022년 61.3GWh에서 2026년 338.3GWh로 커짐에 따라 양극재 시장도 5배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시장의 양극재 시장 규모는 2022년 10.4만t에서 2026년 54.1만t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평가다.
북미 시장 선점을 위해 현지 공장 건설은 필수다. IRA 시행에 따라 내년부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나는 광물을 40% 이상 적용한 배터리를 장착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은 현지 공장에서 제조하고 공급하는 이차전지 소재 기업과 협력사를 구축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양극재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LG화학이 가장 먼저 미국 공장 설립을 확정했다. LG화학은 지난달 30억 달러(4조원) 이상을 투자해 연산 12만t의 미국 최대 규모 양극재 공장 건설에 나선다고 밝혔다. 또 글로벌 고객사들이 IRA의 전기차 보조금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광물 및 재활용 업체와 원자재 공급망 협력도 추진 중이다.
LG화학의 테네시주 양극재 공장 예상 조감도. 12만t 양극재 생산 능력은 연간 고성능 순수 전기차 120만대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테네시 양극재 공장은 내년 1분기에 착공해 2025년 말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이후 생산라인을 증설해 2027년까지 연산 12만t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LG화학 관계자는 “테네시주에서 외국의 단일 기업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LG화학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해외 투자액이라 기대가 크다”며 “이번 투자 결정을 계기로 기존 2026년 26만t에서 2027년 34만t으로 생산 규모를 키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LG화학은 국내에는 청주·익산과 구미 공장을 구축했고, 해외에는 중국 우시 공장에 이어 미국 테네시 공장까지 글로벌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양극재 생산능력은 9만t 수준이지만 5년 뒤에는 4배 가까이 증가하는 셈이다. 양극재를 포함한 전지소재 사업 매출을 2022년 5조원에서 2027년 20조원으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잡았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테네시 양극재 공장은 LG화학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차세대 전지소재 사업의 핵심 기지가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전지 소재 시장과 글로벌 고객사 수요에 적극 대응하며 세계 최고 종합 전지소재 회사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은 고부가 가치의 하이니켈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양극재에 초점을 맞추며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하이니켈 양극재 시장은 올해부터 매년 33% 성장해 2025년 275만t까지 이를 전망이다.
하이니켈 양극재 시장에서 LG화학은 국내 1위 업체가 아니다. 일본 후지경제 조사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이 하이니켈 양극재 시장점유율에서 2020년 기준으로 27.6%로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의 스미모토가 48.8% 점유율로 1위다. LG화학이 에코프로비엠의 뒤를 쫓고 있는 형국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캐나다 퀘벡에 공장을 건설하고 1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LG화학에 앞서 발표한 바 있다. 또 에코프로비엠은 2026년까지 양극재 생산량을 55만t으로 확대하겠다는 미래 성장 계획도 내놓았다. 2027년 34만t 목표를 제시한 LG화학의 생산량보다 크다.
그렇지만 LG화학은 기술력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공정 설계 기술의 고도화로 생산라인당 생산량을 연간 1만t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대개 라인당 생산량은 5000t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LG화학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자랑한다.
LG화학 관계자는 “단일 라인의 생산성은 월드클래스임을 자부하고 있다. 양극재 기업들마다 전략적으로 집중하는 분야가 다르다. 현실성 있는 증설 투자로 계획대로 밀고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리병에 담긴 검은색 분말 형태의 양극재. 고려아연과 전구체 공장 합작, 미래 전지소재 시장 주도
LG화학은 울산에 전구체 공장도 건설 중이다. 전구체는 양극재 생산 직전의 공정이다. 양극재의 원재료로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을 결합해 제조한다. 전구체는 양극재 재료비의 약 70%를 차지한다.
LG화학은 전구체 등 미래 전지소재 시장 주도를 위해 주로 광물을 공급하는 고려아연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고려아연과 원재료 발굴 등 포괄적 사업 MOU를 체결했다. 이와 함께 공고한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2576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하기도 했다. 교환된 주식의 양도 제한은 2년이며 처분 시에는 상호 우선 협상권을 갖게 된다.
양사는 특히 전지소재 분야에서 IRA에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법안을 충족하는 메탈을 공동으로 발굴하는 등 북미에서의 양극재 원재료 공급 안정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업계 최고 수준의 전지 메탈 수급 및 건식제련을 통한 메탈회수, 고순도 메탈 제조 역량 등을 보유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화학 사옥 전경 고려아연은 지난 7월 미국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기업 ‘이그니오홀딩스’를 인수하는 등 북미 전지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그니오가 리사이클링을 통해 리튬·니켈과 같은 광물을 얻어 LG화학에 우선적으로 공급한다면 미국 현지에서 ‘리사이클 광물-전구체-양극재’로 이어지는 배터리 소재 공급망 구축이 가능하게 된다.
신학철 부회장은 “업계 최고의 전문 역량을 보유한 두 기업이 전지 소재 등 전 세계적으로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되는 미래 성장동력 분야에서 힘을 모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 큰 성장,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감한 사업 협력을 지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