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올해도 판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른바 '노노재팬'(일본 제품 불매운동)에서 시작된 부진의 터널에서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기차 등 신차 부재가 최근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일부에서는 앞서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뺀 닛산의 뒤를 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차 점유율 6%로 뚝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토요타·렉서스·혼다 등 일본차 브랜드들의 지난달 판매량은 1447대로 전년 동월 대비 25.8%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급난에도 불구하고 수입차 전체 판매량은 2만8222대로 50.0%나 올랐다. 일본차 브랜드의 부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누적 판매량을 놓고 봐도 일본차 브랜드의 부진은 극명하다. 올해 1~11월 수입차 전체 판매량은 25만3795대로 0.6% 증가한 반면, 일본차는 19.3% 줄어든 1만5315대로 대폭 축소됐다. 이에 따라 일본차의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6%에 그쳤다. 올해 판매된 수입차 100대 가운데 단 6대만 일본차라는 얘기다.
개별 브랜드 실적도 모두 하락세다.
렉서스는 올해 1~11월 6534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27.4%나 떨어진 수치다. 같은 기간 혼다도 27.0%의 낙폭을 그리며 2962대에 머물렀다. 그나마 토요타는 5819대를 팔아 전년 대비 1.9%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올해는 수입차 흥행 척도인 연간 1만대 판매 브랜드 중 일본 브랜드는 이름을 올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본차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입차 시장 입지가 탄탄했다.
렉서스의 경우 지난 2005년과 2006년 연간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대체로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사건에 따른 후폭풍에 휩싸였던 2017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BMW에 이어 3에 오르기도 했다. 토요타 역시 렉서스와 2018년과 2019년 번갈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불거진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이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국내 소비자들은 2019년 7월 일본 아베정권의 대한국 수출 규제 및 화이트 리스트 국가 제외 등 경제 보복·무역 제재에 반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매운동은 일본 브랜드에 직격탄이 됐다. 일본 브랜드의 신규 등록 대수는 2018년 4만5253대에 머물렀지만 불매운동이 본격화된 2019년 3만6661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2만564대, 2만548대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닛산과 인피니티는 국내에서 철수했다.
불매운동보단 경쟁력 떨어진 탓
업계에서는 일본 브랜드의 국내 실적이 단기간에 불매운동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선 전 세계적인 반도체 수급난이 발목을 잡고 있다. 브랜드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현재 일본 브랜드 제품 구매 시 평균 소요되는 기간은 2~3개월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브랜드의 경우 재고가 없어 예상보다 일찍 판매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흐름과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전기차가 없다는 점도 일본차의 약점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 5만5756대에 불과했던 국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2021년 23만1443대로 급성장했다. 올 상반기 누적 전기차 등록 대수는 29만8633대로 이미 지난해 기록을 넘어섰다.
수입차 시장에서도 전기차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올해 1~11월 국내 시장에 팔린 수입 전기차는 총 2만1323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313.0%나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 브랜드는 이렇다 할 전기차가 없다. 렉서스가 UX300e가 전부다.
업계 관계자는 "약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노노재팬 분위기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일본 브랜드의 부진은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내년에도 일본 브랜드의 전기차 출시 소식은 단 한 대에 그치고 있다.
렉서스가 'RZ450e'를 내년 상반기 중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환경부 배출·소음 인증 작업도 마무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으로 자동차 제조사가 환경부 인증 작업을 완료하면, 적게는 1개월 이내 늦어도 6개월 내로 관련 모델이 출시된다. 이르면 내년 1분기, 늦어도 상반기 중 렉서스 RZ450e가 국내 데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다는 일본 내수시장과 유럽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끌어낸 전기차 ‘혼다e’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 시장 출시는 깜깜무소식이다. 토요타도 전기차인 'bZ4X'의 국내 출시에 대해 이렇다 할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본차의 전기 라인업은 단 한 대에 그칠 정도로 시장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며 "그간 누려왔던 하이브리드 후광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전기차 모델 출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