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 기간 점수를 채워온 청약통장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청약에 당첨됐지만, 자금 마련이 어렵고 연 5~8%에 달하는 금리를 감당할 수 없자 벌어지는 일이다. 한때 수백 대 1의 경쟁률로 당첨만 되면 '로또'로 불렸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11일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는 지난 7일 기준 6548가구(사전청약·공공분양 제외) 모집에 6만988명이 1순위 청약을 해 평균 경쟁률 9.3대 1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한 해 1721가구 모집에 28만1975명이 1순위에 청약통장을 던져 평균 163.8대 1의 경쟁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청약시장 인기가 차갑게 식은 것이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1순위 청약자 수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작년에는 5만126가구 모집에 155만1000여명의 1순위 청약자가 몰렸지만, 올해는 5만647가구 모집에 42만3000여명이 신청하는 데 그쳤다. 경쟁률도 30.4대 1에서 8.4대 1로 하락했다.
이른바 특급 단지로 불렸던 곳도 줄줄이 고전 중이다. 특히 3695가구의 일반공급 물량으로 관심을 끌었던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의 1순위 경쟁률은 4.7대 1로, 17개 단지 중 5번째로 낮았다. 둔촌주공은 서울에서 오랜만에 나오는 대단지다. 고금리 기조로 인한 대출이자 부담과 고분양가라는 인식 탓에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다.
김웅식 리얼투데이 리서치연구원은 "둔촌주공이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서 올해 서울 청약 경쟁률을 끌어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둔촌주공에 뒤이어 분양하는 서울 단지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청약에 당첨되고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올해 초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 당첨된 직장인 A 씨는 "그동안 집을 일부러 사지 않고 가점을 50점대 후반으로 만들어 청약했다"며 "그런데 주변 아파트값도 계속 하락 중이고, 금리가 너무 오르면서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도권 아파트 청약 당첨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요즘 3000만~40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을 포기하고라도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지 묻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청약에 당첨된 뒤 포기할 경우 불이익이 상당하다. 특히 투기과열지구는 10년, 조정대상지역은 7년간 재당첨이 안 된다. 업계 관계자는 "1년 전만해도 돈이 있건 없건 다들 묻지 마 청약을 했다. 되는 것만 해도 돈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며 "이제는 당첨되고도 자금 마련에 실패하면서 청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