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LG 신바람 KS 우승 1994년 KBO리그에는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가 가득했다.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LG는 4월 26일 한화 이글스전에 승리하며 리그 1위로 올라선 뒤 정규시즌 일정을 모두 마칠 때까지 선두를 지켜냈다. 한국시리즈(KS)에선 '돌풍의 팀' 태평양 돌핀스를 4전 전승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KS 최우수선수(MVP)는 시리즈 1승 2세이브를 거둔 '노송' 김용수의 몫이었다. 공교롭게도 LG의 KS 우승 시계는 1994년을 끝으로 멈춰 있다.
②4할에 근접했던 '바람의 아들'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은 1994년 타율과 도루, 최다안타 등 공격 5개 부문 타이틀을 휩쓸며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그해 이종범은 104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 프로야구 원년이던 1982년 MBC 청룡 백인천(당시 0.412) 이후 처음이자 역대 두 번째 '정규시즌 4할 타율'에 도전했다. 아쉽게 0.393로 시즌을 마쳐 목표 달성엔 실패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③한화 이글스 시작 빙그레 이글스가 아닌 한화 이글스라는 팀 명으로 첫 시즌을 소화했다. 롯데 자이언츠를 이끌던 강병철 감독이 사령탑에 올라 정규시즌을 공동 3위(65승 2무 59패)로 마쳤다. 16승을 따낸 에이스 한용덕을 필두로 정민철(14승 10패 평균자책점 2.15) 송진우(9승 10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92)가 버틴 마운드의 힘이 대단했다. 한화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해태를 2전 전승으로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선 태평양에 3전 전패로 패해 탈락했다.
④LG 김선진 깜짝 홈런 LG와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1차전은 팽팽했다.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해 1-1 상태로 연장에 돌입했다. LG가 선발 이상훈에 이어 차동철, 김용수를 차례로 등판시킨 것과 달리 태평양은 선발 김홍집이 연장 11회까지 마운드를 홀로 지켰다. 해결사는 LG 대타 김선진이었다. 김선진은 연장 11회 말 1사 후 김홍집의 141구째를 공략해 왼쪽 펜스를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냈다. 김선진은 그해 정규시즌 안타가 20개, 홈런은 단 1개에 불과한 대타 요원이었다.
⑤LG 신인 3인방 LG가 1994년 신바람을 낼 수 있었던 건 '신인 3인방' 류지현(유격수) 서용빈(1루수) 김재현(좌익수)의 역할이 컸다. 류지현이 타율 0.305 15홈런 51타점 51도루, 서용빈이 타율 0.318 4홈런 72타점을 기록했다. 김재현은 당시 고졸 선수로는 사상 첫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 깜짝 놀랄 만한 활약을 보여줬다. 셋 중 마지막에 웃은 선수는 류지현이었다. 쟁쟁한 동료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LG 선수가 신인왕에 오른 건 1990년 포수 김동수 이후 4년 만이었다.
⑥OB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 17명 1994년는 OB 베어스에겐 최악의 시즌이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고 팀 내부 갈등도 극에 달했다. 9월 4일 윤동균 감독에 불만을 품은 17명이 집단으로 항명, 숙소를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OB는 잔여 경기를 2군 선수들로 치러야 했고 팀 성적은 계속 악화(정규시즌 7위)했다. 결국 박철순을 비롯한 항명 주동자에 대해 연봉 지급 정지와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윤동균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한 뒤에야 사건이 일단락됐다. 윤동균 감독의 뒤를 이어 1995년 OB 사령탑에 오른 건 '국민 감독' 김인식이다.
⑦'원 히트 원더' 김홍집 1994년 김홍집은 정규시즌 12승을 따내며 태평양의 돌풍을 이끌었다. 방위병으로 복무, 그 당시 인천에서 열리는 홈 경기 등판만 가능했지만, 프로 두 번째 시즌 '대박'을 일으켰다. 김선진의 끝내기 홈런으로 기억되는 그해 한국시리즈(KS) 1차전에서도 141구 역투로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KS 1차전의 후유증 때문일까. 2003년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시즌 100이닝'을 다시 소화하지 못했다.
⑧첫 왼손 타자 홈런왕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간판 김기태는 1994년 홈런 25개를 때려내 김경기(태평양·23개) 김재현(LG·21개) 등을 제치고 홈런왕에 올랐다.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왼손 타자가 홈런왕에 오른 건 역사상 김기태가 처음. 쌍방울은 김기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김기태의 배턴을 이어받아 역대 두 번째 '왼손 타자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건 1997년 '라이언 킹' 이승엽(당시 삼성 라이온즈)이다.
⑨사자구단의 몰락 부상자가 속출한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두 번째로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허리 부상으로 빠진 에이스 김상엽을 비롯해 강기웅·정경배·류중일·김성래 등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마운드와 타선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우용득 감독과 백인천 타격 인스트럭터의 미묘한 긴장 관계가 팀 성적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갖은 노력 끝에 영입한 재미교포 투수 최용희의 활약(1승 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48)도 미미했다.
⑩40세이브 신기원을 연 정명원 태평양의 뒷문을 지킨 정명원은 정규시즌 사상 첫 40세이브 고지를 정복했다. 50경기에 등판해 105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했고 평균자책점까지 1.36으로 안정적이었다. 올스타전에선 3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KBO리그는 1984년 윤석환(당시 OB·25세이브)이 20세이브, 1993년 선동열(당시 해태·31세이브)이 30세이브를 각각 처음으로 돌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