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을 노리는 구현모 KT 대표가 대주주 국민연금공단의 사실상 반대 선언에 잠시 주춤한 모습이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외풍에 흔들렸던 KT라 국민연금의 이번 움직임을 두고 여러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변이 없는 한 탁월한 경영 성과를 낸 구 대표가 무리 없이 운전대를 계속 잡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다만 폐쇄적인 대표 후보 추천 시스템 등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임 반대표 시사한 대주주 국민연금
구현모 KT 대표는 29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제1회 양자 기술 최고위 전략대화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 의사를 내비친 데 대해 "국민연금 내용을 고민해보도록 하겠다"며 "기본적으로 경쟁하겠다는 게 제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전날 KT 이사회는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나는 구 대표를 차기 주주총회에 추천할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구 대표는 지난 13일에 '연임 적격' 판단을 받았지만 자진해 복수 후보 심사를 요청했다. 이에 지배구조위원회가 대표 후보로 거론되거나 내부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27명을 심사해 구 대표를 최종 후보자로 확정했다.
그런데 발표 약 3시간 만에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CEO(최고경영자)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런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3월 열리는 주총에서 연임 반대표를 던질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KT의 주가는 이런 심상치 않은 기류가 선반영돼 전일 대비 6.75% 빠졌다. 올해 들어 가장 큰 낙폭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국민연금의 기조는 이미 예견됐다. 9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서원주 신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명확한 소유자가 없는 기업의 '셀프 연임'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며 KT와 포스코를 콕 집어 말했다.
서 본부장은 지난 27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소유분산기업들이 CEO 선임을 객관적·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해야 불공정 경쟁이나 셀프 연임, 황제 연임 우려가 해소되고 주주 가치에 부합한다"며 "이번 기회에 KT가 좋은 관행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입장 표명에 KT도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다.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의 행보에 대해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이계로 평가받는 이석채 전 KT 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배임 의혹에 시달리다 결국 자진해서 사퇴했다. 민영화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에 외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연임 유력" vs "낙관 못해"
다만 KT에 우호적인 지분이 적지 않아 국민연금이 반발해도 구 대표의 연임이 실패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현재 KT의 1대 주주는 국민연금으로 10.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혈맹을 맺은 현대자동차와 신한은행이 지분 각각 7.79%, 5.48%를 쥐고 있다.
단순 합산치로 보면 구현모 대표에게 유리할 것처럼 보이지만 변수가 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와 신한지주 지분도 7.78%, 8.29% 가지고 있어 해당 회사들이 같은 방향성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대차와 신한은행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래 모빌리티와 디지털 금융 등 신사업 협력을 위한 것이지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지분을 교환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 연임에 찬성한 것이) 고려사항이기는 하겠지만 미래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경영 성적만 놓고 보면 구 대표는 연임에 큰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다. 탈통신 성과로 서비스 매출 16조원 돌파가 기대되고, 주가는 취임 당시 대비 지난달까지 90% 올랐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남발이 경영권 침해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구현모 현 CEO가 연임에 성공할 것이 사실상 유력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재임 기간 중 실적·주가를 한 단계 끌어올린 유일한 CEO이고 노조의 지지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절차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회사 안에서 대표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은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 추천은 주주가 아닌 이사회가 하기 때문에 '셀프 추천'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구 대표의 연임을 마냥 확신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KT 내부 소식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현재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KT 직원들도 낙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대표 연임 이슈로) 인사나 조직 개편도 다 끝나지 않아 뒤숭숭한 연말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