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구단은 '이정후가 올 시즌 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도전한다'고 2일 밝혔다. 이정후는 지난달 19일 "2023시즌이 끝나면 해외 무대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했다. 2017년 데뷔한 이정후는 올 시즌을 마치면 '1군 등록일수 7년'을 채워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 자격을 갖춘다. FA(자유계약선수)가 아닌 포스팅 시스템은 구단 동의가 필요하고, 키움은 선수 요청 14일 만에 '오케이(OK)' 사인을 냈다.
고형욱 단장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선수가 이미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구단 의견만 전달하면 됐다. 오늘 시무식 행사를 끝내고 바로 회의를 소집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키움은 지난달 16일 2022년 구단 업무를 모두 마쳤다. 이틀 뒤 포스팅을 요청한 이정후에게 바로 응답하기 어려웠다. 2023년 업무 개시를 하자마자 곧바로 내부 논의를 거쳤다. 고형욱 단장은 "(구단 일정 문제로 공식 결정이) 부득이하게 미뤄졌다"고 부연했다.
이정후는 자타공인 KBO리그 최고 타자다. 지난 시즌 142경기에 출전,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 113타점을 기록했다. 출루율(0.421)과 장타율(0.575)을 합친 OPS가 0.996에 이른다. 득점권 타율은 0.387로 4할에 육박했다. 그 결과 타격 5관왕(타율·최다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에 오르며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3000타석 기준 KBO리그 통산 타율 1위(0.342). 물샐틈없는 수비로 5년 연속 골든글러브까지 수상, 고(故) 장효조 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 보유한 외야수 골든글러브 최다 연속 기록(5년 연속·1983∼1987년)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이정후의 해외 진출 의사는 강했다. 일찌감치 리코스포츠에이전시와 손잡고 MLB 진출을 준비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의 이예랑 대표는 MLB 공인대리인으로 과거 김현수(LG 트윈스) 박병호(KT 위즈) 강정호(은퇴) 등의 포스팅을 이끌었다.
키움으로선 이정후가 FA로 팀을 떠나는 것보다 포스팅 시스템으로 빅리그 문을 노크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포스팅을 거치면 계약에 따른 이적료 개념의 비용을 원소속구단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시즌 뒤 MLB 도전에 성공한 김하성(키움→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포스팅 비용은 552만 5000달러(70억3000만원)였다. 키움은 KBO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 없이 네이밍스폰서로 구단을 운영, 다른 구단에 비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다.
이정후의 해외 진출이 공식화하면서 MLB 구단의 관심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정후는 지난달 15일 MLB 기록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이 선정한 아시아리그 유망주 랭킹에서 전체 5위로 평가됐다. 타자로는 무라카미 무네타카(일본·야쿠르트 스왈로스·전체 1위)에 이은 2위. 최근 포스팅 시스템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와 총액 9000만 달러(1145억원)에 5년 계약한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전체 6위, 타자 3위)보다 순위가 더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