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가 공개 사흘만에 글로벌 넷플릭스 5위를 달성하며 순항하고 있다. 한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네수엘라 등 10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장르물의 대가 김은숙 작가와 로코퀸 송혜교의 컬래버레이션이지만 ‘더 글로리’의 흥행은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여운을 준다.
‘더 글로리’는 먹먹함이 남는다. 그 이유는 통쾌한 복수극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다루는 작품은 복수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철저히 ‘가해자가 얼마나 고통받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은 과거의 일일 뿐이며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소위 ‘사이다 복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마치 초인이나 철인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독한 학교폭력(학폭)을 당한 동은은 수시로 화상 자국을 긁적인다. 누군가에게 일상인 일도 동은에게는 트라우마의 트리거로 작동한다. 사진을 찍을 때 터지는 플래시는 학폭 증거사진을 남기는 기억을, 삼겹살을 굽는 회식 자리는 온몸에 화상을 입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또 동은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조차 조심스럽다. 웃다 보면 자신이 다짐한 복수를 잊어버릴까 싶어서다. 이렇게 지독히 현실적인 묘사는 복수의 정당성을 위한 장치보다 폭력의 경험이 피해자의 일상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설명에 가깝다.
한때 죽음까지 고민하게 했던 폭력을 견디고 동은은 복수를 결심했다. 가해자의 인생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결코 평온해질 수 없는 마음. 복수가 자신의 인생을 폭력 이전으로 돌려줄 수 없다는 것도, 앞으로의 인생에 빛을 비춰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은은 ‘사적 복수’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복수를 말리려던 주변인들 역시 동은의 온몸에 가득한 화상 자국에 입을 다물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동은이 ‘복수’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동은을 ‘복수’로부터 구원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동은은 친구들의 폭력이 시작됐을 때부터 선생님에게, 경찰에게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자신이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가해자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교칙’, ‘법의 틀’은 사회적 지위를 등에 업은 폭력 앞에 무력했다.
결국 동은을 살게 하는 이유는 ‘복수’라는 꿈이었다. 다만 동은은 복수가 또 다른 자신의 일상을 파괴한다는 것을 철저히 인지하고 있었다. 동은은 가정폭력 피해자인 강현남(염혜란 분)과 협력하며 “이모님은 딸을 잃을 것이다. (딸과 함께) 찌개를 끓이는 그런 저녁은 오지 않을 거다. 우리가 공모한 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송혜교의 이 대사는 ‘사적 복수’에 대한 김은숙 작가의 시각을 관통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더 글로리’가 이전까지 다른 K복수극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사적 복수는 결코 영광스럽지 않으며, 그 끝은 자신의 일상마저 파괴하는 것이라고.
‘영광’이라는 의미의 ‘더 글로리’라는 제목은 그래서 ‘복수의 끝에는 어떠한 영광도 없을 것’이라는 반어다. 어린 동은(정지소 분)이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폭력의 가해자였던 친구 박연진(신예은 분)을 찾아가 “내 꿈은 너야”라고 말했던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이뤘을 때 더할 나위 없이 기뻐야 할 ‘꿈’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라는 모순. 빛이 없는 꿈, 이뤄도 영광이 없을 복수의 끝을 그리고 있기에 ‘더 글로리’는 더욱 현실적이고 잔인하다.
‘더 글로리’는 오는 3월 시즌 2가 공개된다. 시즌2에서는 문동은의 복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전망이다. 문동은의 복수가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