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배우 나문희는 이 같이 말했다. 1961년 MBC 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데뷔, ‘영웅’으로 뮤지컬 영화에 도전하기까지 나문희가 배우로 걸어온 길은 참 단단하고 성실하다. 방송, 영화, 공연 등을 아우르는 나문희의 필모그래피에는 공백기가 거의 없다. 꾸준함을 단어로 표현하면 나문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2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거침없는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영화 ‘영웅’에서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한 나문희와 마주 앉았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가는 걸음이 사실 가볍지는 않았다. 새벽 당직을 마치고 받은 휴식. 낮잠 한숨 자면 딱 좋을 쉬는 시간을 반납하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원동력은 영화였다. 2006년 개봉해, 4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열혈남아’ 속 김점심. 그 46만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상영관에 앉아 나문희의 연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대식이가 그런 거 아니지? 아야 말해봐. 대식이가 그런 거 아니지? 싸게 일어나 보라고. 아야. 아야. 일어나 보라고! 우리 아들이 그런 거 아니지?”
아들처럼 생각하던 국밥집 단골 재문(설경구 분)이 칼에 찔려 죽은 채 식탁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오열하던 점심. 자기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아들처럼 챙기던 재문의 죽음에 또한 가슴이 찢어지는 그 복잡미묘한 심리를 그토록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연기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조금 과장하면 수많은 감정으로 일렁이던 그 눈동자가 여전히 선명하다.
“연기 자체가 즐겁지는 않아요. 촬영 있으면 잠도 못 자는 날이 있을 정도로 힘들 때도 많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가면 참 신이나요. 아직도 철없이 말이에요.”
모든 직업에 장단점이 있을텐데, 기자란 직업이 참 좋구나 느끼는 게 바로 이런 때다. 어떠한 영역에 진심인, 그곳에서 또렷한 족적을 남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 60년 넘게 일을 하고도 여전히 “현장에 가면 철없이 신이난다”고 말을 하는 배우라니. 이런 말을 기자가 안 됐다면 또 어디 가서 들을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몸이 어째 전보다 더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잠을 못 자고 피곤하지만 좋아하니까. 이 일을, 그리고 ‘국민 엄마’라 불리는 배우와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 순간을. 연중 가장 바쁜 시기인 연말~연초를 보내는 와중에도 이렇게 때로 철없이 신이 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