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 독립운동가, 그리고 웅장한 음악. 영화 ‘영웅’을 구성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국뽕(과장되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행태)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온다. 하지만 ‘영웅’을 단순한 국뽕 영화로 폄하하기는 어렵다. 장면마다 녹아 있는 철저한 고증 덕분이다.
영화 ‘영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정성화 분) 의사의 거사 과정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안중근의 의병 활동부터 하얼빈에서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순국까지 이어지는 장면마다 윤제균 감독의 세세한 고증 노력이 돋보인다.
연출을 맡은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 의사를 다룬 서적 수십여 권을 독파하며 영화 속 ‘디테일’을 살렸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군 포로를 국제법에 따라 놓아주거나, 거사를 치른 뒤 수감된 곳에서 일본인 간수의 존경을 받는 장면은 ‘국뽕’이 아닌 ‘실제’였다. 일본인 포로를 놓아준 이야기는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작성한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 등장하며,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는 평생 그를 기리며 존경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도 마찬가지다. 안중근이 거사에 사용한 권총은 ‘FN M1900’으로, 총 7발의 총알이 들어간다. 영화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향해 6번의 총격을 가하는데, 실제로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후 총에는 1발의 총알이 남아있었다.
9일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일간스포츠에 “영화에서 안중근 의사가 거사에 쓸 총을 최재형(장기용 분) 선생이 준비하는 묘사가 담겼다”며 “실제로 최재형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로 통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 한인사회를 이끈 인물로 항일 무장투쟁을 위해 군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독립 운동가였다. 서 교수는 “역사 속에서 최재형 선생은 직접 안중근의 의거를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이라며 “하얼빈 의거에서 최재형 선생의 역할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지만, 극 중에서 총을 준비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은 (군자금 지원을 적극적으로 했던) 그런 업적을 제대로 녹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재형 선생도 안중근 의사와 같이 유해를 조국으로 모시지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다만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만큼, 영화 ‘영웅’은 허구의 인물이나 설정을 집어넣어 영화적 재미도 함께 살렸다. 예를 들어 극 중 이토 히로부미(김승락 분)에게 접근하는 첩보원 설희(김고은 분)는 실제 인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서경덕 교수는 “설희는 뮤지컬 ‘영웅’에도 등장하는 캐릭터로 영화에서도 연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라며 “설희의 역할은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역사적 고증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당시 을미사변을 겪은 조선인들의 참담함을 함축척으로 보여주는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서경덕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영화 ‘영웅’같은 콘텐츠를 OTT서비스 등으로 전세계에 퍼뜨리고 싶다”며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일제의 역사를 전세계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서 드라마 ‘파친코’에서도 일제침략기 강제징용 문제나 쌀 수탈 등 문제가 자연스럽게 콘텐츠에 녹아들면서 일본 누리꾼들이 굉장히 두려워 했다”며 “영화 ‘영웅’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개척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