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제 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골든글로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 영화계에는 또 하나의 유의미한 발자취였다. 그 어느 때보다 예측이 어려웠던 이번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RRR',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과 경합을 펼쳤다. 최종 수상작은 ’1985‘였다.
박찬욱 감독을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린 작품은 지난해 6월 국내에서 개봉한 ‘헤어질 결심’이다.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수사하던 해준(박해일 분)이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탕웨이 분)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로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제 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첫 15세 관람가 로맨스로도 주목을 받았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 권력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먼저 개최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다. 그 해에 시상식이 주목하는 작품은 어디나 비슷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골든글로브’의 수상 결과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지명 및 수상의 지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역시 지난 2020년 ‘골든글로브’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뒤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바 있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박찬욱 감독은 그간 ‘칸영화제’ 3회 수상을 비롯해 영화계에서 다양한 족적을 남기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계에 떨쳐왔다. 특히 2004년 ‘올드보이’로 들어올린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트로피는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계에도 큰 충격이었다.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을 당시 박 감독은 “이제 내 인생에는 내릭막길밖에 없다”는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이후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지난해 ‘헤어질 결심’으로 마침내 감독상을 받았다. ‘칸영화제’에 4번 후보로 올라 3번 수상했을 만큼 타율이 좋아 ‘깐느 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제는 작품성, 예술 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초창기 작품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전국에서 약 58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쉬리’(1999)와 함께 국내 관객 500만 시대를 열었다. 이 작품으로 ‘도빌영화제’ 작품상, ‘시애틀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도 받았을 만큼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3년 현재까지 박찬욱 감독이 국내외에서 받은 트로피는 50개가 넘는다. 이에 힘입어 ‘제 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2006)에서는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을 지내며 한국 영화의 격을 높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박 감독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박찬욱 감독의 농담처럼 누군가에겐 국제적 시상식에서의 수상이 인생의 정점이며 그 후엔 내리막기만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안주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자기 자신은 물론 한국 영화계에도 영광의 순간을 숱하게 안겼다. 영화 ‘아가씨’(2016)로 ‘제 71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그는 ‘헤어질 결심’을 또 한번 ‘제 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 예비 후보에 올려놨다. 최종 후보는 오는 17일(현지 시간)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