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주연 배우들이 설 연휴 무대인사를 확정, 지난달 21일 개봉한 이후 장기흥행하고 있는 ‘영웅’에 힘을 보탠다.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 역을 맡은 배우 박진주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과 성원으로 ‘영웅’이 장기간 상영되며 마련된 자리. 박진주는 “꾸준히 극장으로 발길해 주시는 관객들께 감사한 마음”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누적 관객 300만 돌파를 앞두게 됐거든요. 진짜 감사하죠. 사실 생각했던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가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요. 꼭 인생 같아요. 우리네 삶처럼 ‘영웅’도 꼭 굳건하게 완주했으면 좋겠어요.”
‘영웅’은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작품. 국내 오리지널 뮤지컬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영화화된 사례라 뮤지컬계에서도 영화계에서도 의미가 깊다. 여기에 뮤지컬 ‘영웅’에서 주인공 안중근 역을 맡은 배우 정성화가 영화에도 같은 롤로 발탁, 특별한 선례를 탄생시켰다.
‘영웅’을 볼 때마다 새로운 포인트가 보여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박진주는 “한 번은 이 영화를 보다가 정성화라는 사람의 인생 자체가 보인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볼 때마다 캐치되는 포인트가 달라요. 그게 많은 분들이 ‘영웅’을 보러 여러 번 극장을 찾아 주시는 이유 아닐까요. 저도 네, 다섯 번 정도 영화를 봤는데 볼 때마다 계속 다른 이유로 울었어요. 어느 날은 제가 연기한 마진주의 이야기가 슬퍼서 눈물이 안 멈춰질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마음이 느껴져서 울었어요. 그리고 어떤 날은 정성화라는 배우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선배님이 저런 연기를 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까’ 싶어서 감동이 차오르더라고요. 한국인은 음악에 몸을 맡기는 민족이잖아요. ‘영웅’은 음악에 묻혀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영화예요. 그 매력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영웅’이 가진 매력을 보다 널리 알리고자 배우들은 설 연휴 무대인사를 결정했다. ‘영웅’의 공식적인 홍보 활동이 모두 끝난 상태기에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박진주는 “관객분들과 더 만나고 싶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며 “비록 하루지만 많은 분들과 뵙게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영화 및 예능에서 다소 코믹한 캐릭터로 소비돼 왔던 박진주는 ‘영웅’에서 맡은 마진주라는 인물을 통해 연기 변신을 제대로 보여줬다. 독립군을 돕는 동지로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굳건한 마음은 물론 이현우와 절절한 사랑까지. 마진주는 여러 번 볼수록 그 단단한 내면과 의연함에 더욱 빠지게 되는 캐릭터다. 박진주는 “사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역을 맡아 연기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게는 마진주 같은 인물이 익숙하다”며 웃음을 보였다.
“마진주는 ‘어린 소녀’라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이 열심히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는 와중에 옆에 놓인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 그랬다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거죠.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잖아요. 그런 인물이 극에서 가지게 될 힘이 분명히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천진난만하게 있다가 사고를 당하는 느낌으로 연기하려고 했죠.”
원작에서도 박진주가 연기한 캐릭터는 10대 소녀. 아직 첫사랑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풋풋한 인물이다. 박진주는 “어린 소녀를 연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피부과를 다녔다”며 “사실 나는 외모를 크게 가꿔야 하는 느낌의 배우는 아니었어서 그 전에는 여드름 짜러 피부과 다니는 게 전부였는데, 피부가 어느 정도 돼야한다는 걸 마진주 역을 맡고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몇 년 전에 찍었지만, 그때도 이미 30대였거든요. (웃음) 그래서 10대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관객 분들이 보시기에 불편하시면 안 되니까요. 근데 사실 무대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러 배역을 맡아서 하잖아요.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이입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나이에 국한되는 성격이 아니고 어린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싶어해요. 배울 점이 많거든요.”
이현우와 호흡은 어땠을까. 박진주는 “이현우는 마진주가 사랑에 빠지는 소년 그 자체 같았다. 억지로 노력할 게 없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손쉽게 촬영된 장면은 없었다”면서도 “이뤄지지 않은 사랑의 결말은 특히 힘들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마진주가 죽는 장면을 찍던 날 밥도 못 먹었어요. 슬퍼서 밥이 목으로 안 넘어가더라고요. 서로를 보내줘야 하는 장면이니까 너무 슬펐어요. 이현우 배우도 많이 슬퍼했던 것 같아요. 이현우 배우는 굉장히 맑은 사람이거든요.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저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서로 정말 첫사랑인 것처럼 애절하게 찍었어요. (웃음)”
박진주에게 ‘영웅’은 한국 영화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윤제균 감독과 만나 작업하는 계기도 됐다. 그는 “윤제균 감독의 응원을 받은 내 삶은 이전과 또 다른 방향이 된 것 같다. 강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전에는 눈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면 두려워하면서 그쪽으로는 잘 안 갔거든요. 주춤주춤했던 것 같은데, 윤제균 감독님을 만난 이후로는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더라도 나쁜 길만 아니라면 잘 뛰어가고 싶다는 용기를 갖게 됐어요. 감독님께 받은 용기를 저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