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은 꽤 흥미로운 대회였다. 출전 자격(24세 또는 데뷔 3년 차 이하)에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KBO리그를 이끌어 갈 신성들이 국제대회 경험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도록 와일드카드(3장)도 활용하지 않았다.
사령탑은 '국보 투수' 선동열 감독이 맡았다. 대선배이자 레전드와 함께할 수 있을 것만으로 젊은 선수들에겐 큰 행운이었다. 선발 시점을 기준으로 잠재력을 증명한 선수들이 두루 이름을 올렸다. 미래 성인 대표팀이 될 재목들이었다. 비록 일본에 2패를 당했지만 '승부 치기' 접전을 치르는 등 나쁘지 않은 대회를 만들었다.
APBC 엔트리 25명을 구성한 기술위원회의 안목은 얼마나 맞아떨어졌을까. 약 5년이 지나 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을 앞둔 현재, APBC에 승선했던 선수 중 4명은 성인 대표팀에 승선할 만큼 성장했다. 심지어 야수 쪽은 팀의 기둥이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박세웅(롯데 자이언츠) 구창모(NC 다이노스)가 그 면면.
김하성은 현재 폼으로는 대표팀 최고의 선수다. 2021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고, 2년 차였던 2022시즌 공격과 수비 모두 괄목할만한 상승세를 보여줬다. MLB 데뷔 시즌엔 출전 기회가 적어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팀 주전 선수(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이탈을 메우며 소속팀 주전 유격수로 뛰었고, 내셔널리그(NL) 이 부문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정후는 현재 KBO리그 통산 타율(0.342) 1위에 올라 있는 선수다. 2017시즌 신인왕에 올랐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 정상급에 오른 뒤 2021시즌 타격왕, 2022시즌 타격 5관왕(타율·타점·안타·출루율·장타율)에 오르며 최고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MLB 진출을 선언하자,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버지 이종범(현재 LG 트윈스 코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났다. 야구를 처음 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와 중압감. 이정후는 이겨냈다.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상대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이에게 13이닝 무실점 21삼진을 허용하며 침묵했던 한국야구. 이번 대회는 이정후가 있어 다를 것을 보인다.
박세웅은 2017년 APBC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당해 시즌(2017) 데뷔 처음으로 두 자릿 수 승수를 기록했고, 소속팀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이끌었다. 1차 지명 특급 유망주였던 그가 정석대로 리그 대표 선발 투수로 성장한 것.
하지만 이후 시련을 겪었다. 2017시즌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한 여파가 컸고, 부상으로 2018~2019시즌 연속으로 풀타임을 치르지 못했다.
시련은 박세웅을 강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규정이닝을 거뜬히 넘어설 수 있는 선수가 됐다. 최근 2시즌(2021~2022)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기도 했다. 올겨울 스토브리그에서 기간 5년, 총액 90억원에 장기 계약까지 따내며 故 최동원을 잇는 21세기 '안경 에이스'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구창모는 양현종·김광현의 뒤를 잇는 좌완 에이스 기대주다. APBC 선발 시점보다 현재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21시즌은 부상 탓에 통째로 등판하지 못했지만, 2020시즌 15경기에서 1점(1.74)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리그 정상급 투수가 됐다. 긴 공백기로 실전 감각 저하가 우려된 2022시즌도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했다.
'숙적' 일본의 전력이 역대 최고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김하성은 "꼴찌가 일등을 이기는 게 야구"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눈앞 난관을 넘어서고 어느새 한국야구의 주축이 된 네 선수. 이번 WBC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