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이’ 이야기를 하면서 고(故) 강수연을 빼놓을 수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이 작품이 바로 한국 영화계의 아이코닉한 인물인 강수연의 유작으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연상호 감독과 마주앉았다. ‘정이’의 후반작업 단계에서 비보를 마주한 연 감독은 경황이 없는 와중 장례식에 참석, 고인과 첫 만남을 되짚으며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했다.
“‘돼지의 왕’을 했을 때 ‘칸영화제’에 갔었어요. 그때 어떤 프로그래머가 저한테 말을 걸었는데, 제가 영어를 못하거든요. ‘누구지?’ 갸우뚱 하고 있을 때 강 선배가 지나가다 그런 저를 보곤 통역을 해줬어요. 강수연 정도의 배우가 생판 모르는 감독의 통역을 해준다니…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죠. 친절한 분이셨어요.”
영화 ‘씨받이’로 1987년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고 강수연. 그는 이후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드라마 ‘여인천하’(2001), ‘문희’(2007) 등 여러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대중과 꾸준히 소통했다.
‘칸영화제’ 이후 친분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걸 인연 삼아 연락을 드리는 건 폐가 아닐까” 하는게 연상호 감독의 본심이었다. 그러다 ‘정이’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이라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배우를 떠올린 순간, 이 영화가 굉장히 콘셉츄얼하게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여담이지만 연상호 감독은 사이버 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자주 들락날락 할 정도로 그런 쪽에 애정이 깊다.
결론적으로 연상호 감독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할리우드 고전 같은 클래식한 느낌에 SF를 접목시키는 시도. 고 강수연이 가진 고전적이면서도 단단한 존재감은 ‘정이’를 연 감독이 원하는 바로 그런 방향으로 이끄는 데 큰 몫을 했다.
“후회돼요, 선배님이랑 작품 얘기를 많이 못 한 것이요. 선배님이 모임을 좋아하셔서 작업실에 모여서 술도 마시고 했는데, 막상 작품 얘기는 많이 못 했거든요. 맨 농담만 해서… 그게 참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