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정남은 영화 ‘영웅’에 이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킨 작품이라고 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이야기를 담은 ‘영웅’을 작업하면서 그는 “이 정도로 공부해본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가 연기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뜨겁고 치열했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쓰신 ‘안응칠 역사’나 하얼빈 의거와 관련된 자료를 전부 찾아봤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대단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더라고요. 이렇게 독립운동한 분들 찾아내는 것도 재미가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가진 생각과 사상이 바뀌게 됐죠.”
영화 ‘영웅’은 동명의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최근 누적 관람객 300만명을 돌파했다. 배정남은 안중근(정성화 분)을 돕는 명사수 조도선 역할을 맡았다.
배정남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로 조도선은 러시아에 살면서 독립군 장군도 하고 명사수였던 인물”이라며 “(역사적 고증을 위해) 전문가 스나이퍼가 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독립운동이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의거 성공을 위해 손을 보탠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배정남이 연기한 조도선 역시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준비하고 채가구역에서 의거를 준비하다 붙잡혔다.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정차하지 않아 의거에는 실패했지만, 안중근이 성공하면서 함께 법정에 서게 됐다.
배정남은 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4~5kg이 나가는 장총 소품을 품에 들고 사격 자세를 수없이 가다듬었다. ‘영웅’에서 배정남이 웃통을 벗은 채 빨래바구니를 옮기는 장면도 실제로 세탁소를 운영했던 조도선의 직업을 고증한 장면이다. 배정남은 “그 장면은 11월 말에 라트비아에서 찍은 것”이라며 “땀 흘리는 몸을 표현해야 해서 물도 뿌렸다. 정말 추웠다”고 회상했다.
‘영웅’을 촬영하며 시작된 역사 공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평소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배정남은 이제 오래된 태극기를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원래는 미국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영웅’ 출연을 한 뒤 옛날 태극기가 엄청나게 멋있게 보였다”며 “동묘에서 오래된 태극기 20장 정도를 구했다”고 전했다.
“거짓말 안 하고 제 지갑에 딱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아버지 사진, 또 하나는 외할머니 사진, 그리고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찍은 ‘인내’라고 적힌 도장을 찍은 종이입니다. ‘인내’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기도 한데 전 그 단어를 좋아해요. 제 인생도 인내라는 말을 갖고 다닐 겁니다.”
인간 배정남의 인생 영웅도 밝혔다. 첫 번째로 외할머니를 꼽았다. 그는 “아기 때부터 나를 키워준 외할머니가 영웅이다”며 “아버지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셨고 어릴 때 어떻게든 나를 키우려한 영웅”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시절 살뜰히 보살펴분 하숙집 할머니도 그에게는 영웅이었다.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살아온 배정남은 최근 인생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반려동물인 ‘벨’이 허리 디스크로 크게 앓아 누우면서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배정남은 “원래도 긍정적인데 벨이 아프면서 더 그렇게 됐다”며 “반려동물이 아프면 치료를 포기하고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죽을까봐 불안했는데, 지금은 벨이 걷지 못해도 유모차에 태워 다닐 수 있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살자. 그렇게 생각했고 제가 무언가 해줄 시간이 생겼다는 게 행복했어요. ‘언젠가는 벨이 떠나겠구나’하는 생각도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인생은 40세부터라고 자신있게 미소지은 배정남은 앞으로도 ‘인내’를 가지고 롱 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