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반세기만에 부활한 한국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하 ‘엄마의 땅’)이 정성들인 연출 기법과 의미 있는 메시지로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25일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 ‘엄마의 땅’은 그리샤와 꼴랴 남매가 반려순록 세로데토와 함께 전설 속 숲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그린다. 툰드라를 연상케 하는 설원을 배경으로 ‘공생’이라는 자연친화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
특히 이 작품은 ‘콩쥐 팥쥐’(1977) 이후 근 반세기에 가까운 45년 만에 탄생한 한국의 스톱모션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국내 애니메이션계에서 스톱모션 기법은 1967년 ‘흥부와 놀부’에서 가장 먼저 시도됐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콩쥐 팥쥐’가 나온 이후 명맥이 끊겼다. 움직임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가며 프레임을 만들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 기법이 필요한 만큼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시도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땅’으로 무려 반세기 만에 한국판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탄생시킨 박재범 감독은 “스톱모션 기법이 주는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3D 등 기술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주는 분위기와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스톱모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질감과 감각이 있다”면서 “사람이 일일이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스톱모션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신음하고 있는 이 때 ‘엄마의 땅’은 ‘공생’이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자연으로부터 취하고, 취한 만큼 되돌려놔야 한다는 자연친화적인 메시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아바타: 물의 길’과 맞물려 남다른 울림을 준다. 여기에 그저 그대로 존재할 뿐인 자연과 그것을 증오하기도, 감사해하기도 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계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역작 ‘모노노케 히메’를 떠올리게도 한다.
빼어난 퀄리티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소구할 수 있을 만한 메시지 덕에 이 작품은 개봉 첫 주 주말 한국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CGV의 실관람객 평가 지수인 골든에그 지수 역시 94%를 기록하는 등 분위기가 좋다. 관객들은 “툰드라의 차가운 바람과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다. 어렵지 않으면서 유치하지도 않고 따뜻한 울림이 있다”는 등의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무려 2만8440시간이 걸렸다. 툰드라의 경이로운 자연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트가 10개. 1컷을 촬영하는 데 평균 소요시간 8시간. 제작진이 한 땀 한 땀 움직여가며 생명력을 불어넣은 인형의 수 22개. 남다른 정성과 노력으로 탄생한 한국 토종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이 ‘모노노케 히메’처럼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회자될 명작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하나의 거대한 획을 그었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