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 ‘안다’는 것은 위험하다. 대부분의 ‘안다’는 ‘그렇게 보인다’에서 촉발하고, ‘그렇게 보인다’는 감각은 자주 보이지 않는 것을 간과하게 하기 때문이다.
‘유랑의 달’은 일본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10세 아동 납치 사건 이후 15년 뒤 유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낙인찍힌 두 사람이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일본의 톱스타인 히로세 스즈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 3관왕을 석권한 연기파 배우 마츠자카 토리가 주연을 맡았다. ‘분노’의 이상일 감독과 ‘기생충’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협업해 국내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 영화에서 후미(마츠자카 토리 분)는 아주 조용한 남자다. 바깥에서 혼자 비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선뜻 우산을 내미는 상냥함을 가졌고, 집안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들이다. 그런 후미는 왜 10세 아동 사라사(히로세 스즈 분)를 납치했을까.
‘용서받지 못한 자’(2014)에서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악순환에 대해, ‘분노’(2017)에서 믿음, 의심, 편견, 사랑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풀어냈던 이상일 감독은 ‘유랑의 달’에서도 좀처럼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 후미와 사라사의 사건은 당사자들조차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 할 정도로 너무나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은 모두 명명백백히 밝혀내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할 때도 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할 거라는 것은 순진한 기대다.
누구도 납득시키기 어려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 그저 흘러가다 만났을 뿐인 후미와 사라사의 이야기는 어떤 상처는 물 위에 떠서 일렁이는 달처럼 흘러가게 둬야 하는 법이란 사실을 상기한다. 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
마츠자카 토리는 후미 역을 위해 무려 10kg나 감량하는 연기 투혼을 보여줬다.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 거의 내내 안으로 감정을 삭이던 후미가 뼈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몸으로 폭발하듯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에선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는 감정이 스크린 밖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히로세 스즈는 처연함과 해맑음을 오가며 그런 마츠자카와 호흡을 맞춘다. 사진=영화특별시SMC 제공 다만 어떠한 말할 수 없는 사정을 다루기 위해 소아성애를 소재로 끌고 온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칫 위험한 범죄에 이해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이상일 감독이 탄생시킨 또 한 편의 문제작 ‘유랑의 달’은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 15세 관람가. 15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