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통신사인 KT가 또다시 정치권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래왔듯 대표 교체 압박에 시달리며 새해 시작부터 발목이 잡혔다. 민영화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가 소유로 여겨질 정도다.
KT 이사회가 연임 의지를 피력한 구현모 대표를 차기 CEO(최고경영자)로 확정하자마자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정치권에서는 후보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관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인 소유분산기업의 감시를 강화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정작 KT의 흑역사를 만든 것은 CEO가 아닌 정치권이었다. 유력인사 자녀의 채용 비리와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불편한 관계의 고리를 끊지 않고 이득을 챙겼다. 무슨 이유를 들어도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다.
결국 KT 이사회는 대표 선임 최종 관문인 다음 달 정기 주주총회를 한 달가량 앞두고 지금까지의 절차를 백지화했다. 공개 경쟁 방식으로 전환해 잡음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최종 투표만 남은 대표 선임 일정을 뒤엎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구현모 대표의 자신감도 일부 반영됐다.
구 대표는 앞서 국민연금이 우려를 표하자 단독 후보에 올랐는데도 복수 후보 심사를 검토해줄 것을 자진해 요청했다. 이후 이사회도 그의 뜻을 반영해 후보자 명단과 심사 절차, 단계별 결과를 모두 보여주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객관성을 높여 후보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원활하게 진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최소한의 불확실성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국민연금의 KT 지분율은 10% 남짓이지만, 주총 참석 주주 대비 비중으로 보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의 성과만 놓고 보면 구 대표에게 적수는 없다. 주가는 취임 때보다 40% 넘게 뛰었다. 경쟁사 주가가 지지부진한 것과 대비된다.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 도약 성과로 연 매출 25조원 시대를 열었으며, 업계의 의구심을 딛고 진출한 콘텐츠 사업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류 확산에 기여했다.
'올A' 성적표를 보여줬는데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불합리한 원인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을 기업 조종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와 증권가의 지지까지 받은 구현모 대표다. 이제 더는 꺼낼 카드도 없다.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재차 다리를 거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