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에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공인구는 롤링스사(社) 제품이다. WBC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국제대회여서 1회 대회부터 MLB 공인구인 롤링스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야구 국제대회마다 공인구가 다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에선 대만 아마야구 공인구 브렛(BRETT),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는 일본 사사키(SSK) 제품이 공인구로 쓰였다. SSK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을 의미하는 OEM 방식으로 공을 제작, 프로야구 공인구 공급업체 스카이라인이 운영하는 스리랑카 공장에서 공을 만들고 표면에 SSK 로고를 찍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선 2019 프리미어 때와 마찬가지로 SSK사의 OEM 제작공이 공인구였다.
사연이 각기 다른 만큼 공인구 제원도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국제대회를 앞둔 선수들은 적지 않은 시간을 '공인구 적응'에 할애한다. 손가락 감각이 예민한 투수들은 차이에 더 민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WBC는 공인구 적응이 특히 강조되는 대회다.
롤링스사 공인구를 잡아본 투수들은 한결같이 "크고 미끄럽다"고 말한다. "미끄럽다"는 표현은 솔기(실밥) 높이와 연관 있다. 지난해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수기검사에 따르면 스카이라인의 무게는 144.3g, 둘레는 233㎜ 안팎이다. 롤링스사 공인구는 무게나 둘레도 약간 다른데 스카이라인보다 솔기 높이가 낮다는 게 정설이다. 스카이라인의 솔기는 보통 1.01~1.14㎜다.
왼손 투수 구창모(NC 다이노스)는 "(롤링스사 공인구는) 솔기가 두꺼운데 튀어나오지 않아서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솔기도 미끄러워 공이 손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다"며 "잡아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오른손 투수 원태인(삼성 라이온즈)도 "확실히 공이 크고 미끄럽다. 대회 전까지 적응이 필요한 것 같다"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투구 시 솔기를 강하게 채야 하는 커브나 슬라이더는 구종 구사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주 무기가 슬라이더인 왼손 투수 김광현(SSG 랜더스)은 "KBO 공인구가 실밥도 얇고 (공의) 크기도 작다. 반대로 롤링스는 (공의) 크기가 크고 실밥도 무딘 편이어서 차이가 있다"며 "나 또한 (빅리그) 초반엔 공인구가 어색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회전이 덜 먹는 감이 있었고 공의 무브먼트에도 영향이 있었던 거 같다"고 회상했다. 김광현은 KBO리그 공인구와 MLB 공인구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선수 중 하나다. 대표팀은 WBC 최종 엔트리에 포함한 15명의 투수 중 빅리거 경험이 있는 선수가 김광현과 양현종(KIA 타이거즈) 둘뿐이다.
롤링스사 공인구가 생소한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일본 닛칸스포츠에 따르면 WBC 일본 대표로 나서는 오른손 투수 우다가와 유키(오릭스 버펄로스)는 WBC 공인구와 일본 프로야구(NPB) 공인구를 번갈아가면서 던졌다. 불펜에서 첫 20구를 롤링스사 공인구로 시작했지만 원하는 코스로 제구가 되지 않자 이를 지켜보던 코치 지시로 '교차 투구'를 진행한 것이다. 지난해 NPB에 데뷔한 우다가와는 19경기에 등판, 평균자책점 0.81을 기록한 전문 불펜 자원. 160㎞/h에 이르는 빠른 공에 낙차 큰 포크볼을 주 무기로 사용한다.
고전하는 건 지난해 NPB 센트럴리그 최우수 불펜 유아사 아쓰키(한신 타이거즈)도 마찬가지다. 지난 8일 스프링캠프 첫 실전 등판을 마친 유아사는 155㎞/h의 빠른 공을 던졌지만, 제구가 흔들렸다. 오카다 아키노부 한신 감독은 "공인구의 영향 탓인지 포크볼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하던 공이 아니었다"고 우려했다.